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모든 권력은 폭력” 연극경력 150년, 70대 여성 셋이 뭉쳤다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모든 권력은 폭력” 연극경력 150년, 70대 여성 셋이 뭉쳤다

입력
2020.11.11 04:30
20면
0 0

연출가 한태숙·극작가 정복근·배우 손숙
26년 만에 ‘저물도록 너…’에서 다시 만나
이념으로 갈라진 한국사회 반세기 조명

경기도극단 신작 ‘저물도록 너, 어디 있었니’에서 의기투합한 연출가 한태숙(왼쪽부터), 극작가 정복근, 배우 손숙. 세 사람의 나이 합은 220년, 연극 경력의 합은 150년에 이른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경기도극단 신작 ‘저물도록 너, 어디 있었니’에서 의기투합한 연출가 한태숙(왼쪽부터), 극작가 정복근, 배우 손숙. 세 사람의 나이 합은 220년, 연극 경력의 합은 150년에 이른다. 경기아트센터 제공


인생 경력 220년, 연극 경력 150년. 존재 자체가 한국 연극사인 대가들이 뭉쳤다. 경기도극단의 신작 ‘저물도록 너, 어디 있었니’에서 만난 연출가 한태숙(70), 극작가 정복근(74), 배우 손숙(76) 얘기다. 19일부터 29일까지 경기 수원 경기아트센터 소극장에 오르는 이 작품은 연출, 극작, 주연 모두가 ‘70대 여성’인, 드물고도 귀한 작품이다.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마주한 세 사람은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이니 파란만장했던 옛 시절이 새록새록 생각난다”며 추억을 나눴다. 오랜만이라 함은, 1994년 연극 ‘그 자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나’를 말한다. 이 셋이 한 작품에서 만나는 건 그 후 26년 만이다.

극의 뼈대는 시위에 나간 운동권 딸을 찾아나선 고위공직자의 아내 성연의 이야기다. 종북좌파니, 꼴통보수니 하는 말들이 횡행하는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이념 갈등을 들여다본다.

시작은 지난해 한 연출의 경기도극단 예술감독 부임이었다. 한 연출은 1990년대 ‘얼굴 뒤의 얼굴’에서부터 ‘배장화, 배홍련’에 이르기까지 숱한 작품을 함께 해 온 정 작가를 찾아갔다. 정 작가는 한 연출에게 새 희곡을 건넸다. 이념으로 갈린 한국 사회의 반세기 풍경을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모든 권력의 본질은 폭력이다”라는 대사도 서늘하다.

정 작가는 진지했다. “서로 애쓰고 싸우고 갈등하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우리가 바라던 좋은 세상이 됐는지 묻고 싶었어요. 자신만이 옳다고 믿는 모든 권력에 맞서, ‘생명’을 보호하려는 단순한 올바름부터 철저하게 지켜야 하는 때가 바로 지금이라는 생각으로 썼습니다.” 한 연출도 만족스러웠다. “정 작가님의 펜 끝이 여전히 날카롭더군요. 시선의 깊이도 남다르고요.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 첨예한 현 시대에 꼭 필요한 작품이라고 생각했어요.”


경기도극단 신작 ‘저물도록 너, 어디 있었니’ 연습실 리허설 장면. 경기아트센터 제공

경기도극단 신작 ‘저물도록 너, 어디 있었니’ 연습실 리허설 장면. 경기아트센터 제공


여기에 손숙이 합류하면서 ‘삼각 편대’가 완성됐다. 손숙은 주인공 성연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월북 시인 임화의 아내 지하련 역을 맡게 됐다. 손숙은 “예전부터 한 연출에게 배역 좀 달라고 조르고 졸랐는데 드디어 소원을 이뤘다”며 화통하게 웃었다. “꾸준히 연극을 해 왔지만, 그럼에도 ‘연극다운 연극’에 항상 목말라 있었어요. 출연 제안을 받자마자 ‘얼씨구 좋다’ 환호했죠. ‘국민 어머니’가 아닌 역할이라 더 즐겁고 신나요.”

욕심나는 작품이니 준비 단계에선 불꽃이 번쩍번쩍 튄다. 손숙은 “작가, 연출, 무대 디자이너 셋이서 시대상에 대한 견해차로 3시간이나 격렬하게 싸우더라”고 했다. 한 연출도 “육탄전까지만 안 갔을 뿐”이라며 “치열한 논쟁을 겪어야 좋은 극이 나온다”고 보탰다. 그래서 결국 누가 이겼을까. “연극은 항상 연출이 이기는 싸움”이라고 정 작가가 슬쩍 귀띔하며 웃었다.

손숙은 “바로 이런 작업이 연극의 매력 아니겠냐”고 했다. 코로나19가 덮쳐와도 무대를 절대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코로나19 탓에 경기도극단은 이 작품으로 올해 처음 극장에서 관객을 직접 마주한다.

“연극엔 경제 논리로는 절대 재단할 수 없는 신비한 힘이 있어요. 저에겐 필생의 업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양보할 수 없어요.”(한) “아무렴요. 연극을 할 때 비로소 살아 있다고 느껴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고 마음이 아프면 극장에 가라는 말이 있어요. 관객에게 용기와 위로를 주고 싶어요.”(손) “극장에선 모두 하나가 돼요. 무대와 객석 사이 경계가 허물어지는 순간이 반드시 찾아와요. 그 순간을 함께 나누었으면 합니다.”(정)

김표향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