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닫기
'실거주 목적' 계약갱신 거절했다면 2년간 집 못 판다

알림

'실거주 목적' 계약갱신 거절했다면 2년간 집 못 판다

입력
2020.11.11 04:30
15면
0 0

예측할 수 없던 불가피한 경우만 매도 가능
임대인과 임차인 간 민사소송 많아질 듯

8일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붙은 매물 정보, 연합뉴스

8일 서울의 한 공인중개사무소에 붙은 매물 정보, 연합뉴스

대전에 사는 임대인 A씨는 7월 임차인 B씨와 전세 2억3,500만원을 3억3,000만원으로 올리는 대신 임대차 기간을 2년 연장하기로 했다. 하지만 그달 말 개정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시행되자 B씨는 계약 만료 한달 전인 9월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겠다고 말을 바꿨다. 이렇게 되면 전세보증금은 최대 5%(1,175만원) 밖에 올리지 못한다. 그러자 A씨는 실거주를 하겠다며 계약 갱신을 거절했고, 결국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를 찾았다.

쟁점은 집주인 A씨의 실거주 사유였다. B씨는 "집주인 주장은 허위라는 합리적인 의심이 든다"며 "실거주하는 목적을 증명하지 않으면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A씨는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면 실거주를 하겠다는 것"이라고 맞섰다.

결국 마음을 돌린 건 A씨였다. 실거주를 선택하면 2년 동안 집을 팔기가 어려워진다는 게 발목을 잡았다. 분쟁조정위 관계자는 "세입자가 집을 나간 뒤 2년간 정당한 이유 없이 집을 매도하면, 주택임대차보호법 혹은 민법상 손해배상책임을 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결국 A씨는 세입자가 계약갱신청구권을 행사하지 않는 조건으로 전셋돈을 기존 합의보다 3,500만원 적게 올렸다.

계약갱신청구권과 전월세 상한제가 포함된 임대차보호법 개정안이 시행되자 집주인들 사이에선 '실거주 후 매도'가 대표적인 회피 전략으로 거론됐다. 주택임대차법에 관련 제재 규정이 없기 때문에 문제 삼기 어렵지 않겠냐고 본 것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꼼수'에 대해서도 집주인에게 엄정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는 방침이다. '실거주' 의무를 지키지 않고 단순 변심 등의 이유로 집을 팔 경우 위법으로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매매를 허용하는 범위를 어디까지 할지를 두고 관련 분쟁이 적지 않을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실거주 후 정당한 이유 없이 매도하면 손해배상해야

10일 법무부와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임대인이 실거주를 이유로 계약갱신청구권을 거절한 뒤에 정당한 이유 없이 제3자에게 임대 주택을 매도하면 기존 세입자에게 손해배상을 질 수 있다. 민법상 일반 불법행위인 허위 갱신 거절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정부가 그동안 발표했던 임대차법 관련 설명에는 '실거주 후 2년 내 제3자에게 임대'하는 경우에 대해선 집주인에게 손해배상 책임이 있다고 했다.

하지만 실거주를 한 후 매매하는 경우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정이 없었다. 이에 따라 낮은 전셋돈을 받고서 최소 4년의 임대차 기간을 기다리느니, 실거주를 이유로 세입자를 내쫓고선 잠시라도 거주한 뒤 팔면 되지 않겠냐는 목소리가 적지 않았다.

계약 갱신·종료 관련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 접수 현황

계약 갱신·종료 관련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 접수 현황

그러나 정부는 이런 행위 또한 위법하다고 못 박았다. 주택임대차법의 목적이 세입자 보호인데, '실거주 후 매도'는 이 취지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인이 계속 거주할 의사가 없었다는 고의성이 인정되면 손해배상 책임을 질 수 있다"며 "사실관계를 자세히 따져봐야 하지만, 단순 변심으로 판 경우는 불법행위로 판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예외적으로 허용되는 경우도 극히 일부에 불과할 것으로 봤다. '갱신 거절 당시 예측할 수 없었던 부득이한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실거주하던 집주인 혹은 그의 직계존비속이 사망한 경우를 대표 사례로 거론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갑작스레 해외 발령이 나서 해당 지역의 주택 구매 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집을 팔아야만 하는 경우 등도 정당한 매도 사유가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갱신 거절 후 2년간은 실거주해야 안전"

이렇게 되면 계약이 종료되고 상당 기간이 지난 후에도 분쟁이 벌어지는 경우가 빈번해질 전망이다. 설령 불가피한 상황으로 매도했더라도, 세입자는 임대인이 허위로 갱신을 거절했다고 주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전세 낀 주택을 실거주 목적인 제3자에게 파는 경우와 달리, 이 경우는 직전 세입자와 매매 전에 합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자칫하면 집주인이 불필요한 분쟁 조정이나 민사소송에 휘말릴 수 있는 것이다.

부동산 업계에선 "실거주를 택한 집주인은 사실상 2년간 집을 못 판다는 것"이란 해석이 나온다. 국토부 관계자는 "임대인이 실거주하겠다며 계약갱신을 거절한 경우, 2년간 제3자 임대를 금지하고 있다"며 "매매도 이에 준해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법무부 관계자 또한 "2년 동안은 실거주하겠다고 생각하고서 계약 갱신을 거절해야 안전하다"고 밝혔다.

한편 대한법률구조공단에 따르면 임대차 계약 갱신 및 종료 관련 분쟁으로 8월부터 지난달까지 주택임대차분쟁조정위원회에 접수된 조정 신청은 총 43건에 달했다. 이는 작년 같은 기간 대비 10배가 넘는다.

강진구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