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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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나 지금이나...

입력
2020.11.09 16:00
수정
2020.11.09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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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진
박성진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게티이미지뱅크


지난달 8일, 피지(Republic of Fiji)의 수도 수바(Suva)에 있는 호텔에서 대만(중화민국)의 대사관 역할을 하는 상무판사처(商務辦事處)가 중화민국 건국기념일(쌍십절, 雙十節)을 맞아 개최한 리셉션에서 중국 외교관과 대만 상무판사처 직원들 간 몸싸움이 벌어졌다.

당시 중국 외교관들은 현장에 무단 난입해 참석자들의 사진을 찍었고, 이 과정에서 제지하던 대만 측과 충돌이 벌어진 것으로 전해졌다. 서로 더 세게 맞았다고 주장하는 가운데, 대만과 중국의 언론은 물론 당국자들까지 으르렁대고 있다.

대륙 외교관이 왜 대만의 행사장에 들이닥쳤는가. 피지는 원래 1975년부터 중국과 국교를 맺었다. 당연히 대만과는 정식 외교 관계가 없다. 이에 중국 외교부는 대만 측이 소위 국경절 행사를 공공연하게 개최한 것은 ‘하나의 중국 원칙(一個中國原則)’을 깨트리고, 중국과 대만을 분리하려는 행태라고 질타한다.

관전 포인트는 하나 더 있다. 대만은 자국 외교관이 맞았다고 하는데, 대륙은 ‘대만 스파이’가 중국 외교관을 때렸다고 한다. 중국 측은 피지에 대만 외교관이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왜냐면 대만과 피지는 국교 관계가 없고, 나아가 대만은 나라가 아니므로 외교관 자체가 없다는 논리다.

중국 주장에 따르면, 당시 현장에 대만 국기(靑天白日旗)가 걸려있었고 케이크 위에도 대만 국기가 그려져 있었는데, 또한 절대 용납할 수 없다고 한다. 대륙은 심지어 대만 국기를 위기(僞旗, 가짜 국기)라고 한다. 요컨대 이런 모든 정황이 ‘하나의 중국 원칙’을 깨트리는 행위라서 자신들은 정당한 권리를 행사했다는 말이다.

상황은 더 꼬여갔다. 대만은 군사력 강화를 위해 미국에서 무기를 수입하겠다고 요청했는데 트럼프 행정부도 중국의 위협을 이유로 승낙했다. 대만은 구입한 첨단 무기들을 대륙 코앞에 있는 섬들에 배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이상 일련의 사태에 대한 중국 국방부 대변인의 발언 요지는 다음 같다. “대만 독립을 꾀하는 분리주의 세력에 경고한다. 무력으로 독립을 꾀한다면(以武謀獨)은 결과는 죽는 길 하나(死路一條)뿐이다. ‘당비당거(螳臂當車)’하지 마라. 멸망을 자초할 뿐이다(自取滅亡).” ‘당비당거’는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성어(成語) ‘당랑거철(螳螂拒轍)’의 다른 표현이다.

10월 15일자 ‘인민일보’에 실린 관련 논평을 보면, 살벌하지만 교과서급 한문이다. 그중 ‘물위언지불예야(勿謂言之不預也)’도 성어로, “미리 경고하지 않았다고 나중에 탓하지 말라”는 뜻인데 청나라 강희제(康熙帝)가 처음 쓴 표현이다. 물리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 대만에 군사행동을 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날린 셈이다.

온 세상이 감염병으로 힘든 판에 왜들 저러는지 모르겠지만, 남 말 할 계제가 아니다. 저들의 모습에서 우리의 현실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북한이 즐기는 위협적인 말투는 중국과 비슷하다. 무력으로는 우리를 압도한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는 허구한 날 북한에 굽실대며 하나마나 한 소리만 하고 있다. 여론이 안 좋으면 근엄한 표정으로 ‘예의 주시 하고 있다’고 할 때도 있지만 그 때 뿐이다. 그만큼 쳐다봤으면 충분하지 않은가. 듣는 사람까지 눈이 충혈 되는 것 같다.

성호(星湖) 이익(李瀷, 1681-1763)선생께서 하신 말씀이 있다.

“예로부터 중국은 외세와 전쟁을 치러 온전한 승리를 거둔 적이 없었다. 비록 한때의 요행은 있었으나 결국에는 망국을 자초하는 원한만 맺어 놓았다. 우리나라는 땅도 좁고 힘도 약한 데다 밖으로 강적을 이웃하고 있는데, 세상물정 모르는 고담준론만 숭상하고 있으니, 마지막에 어떻게 될지 모르겠다. 슬프다.(自古中土之於外塞, 未有全勝者也, 雖有一時之徼幸, 終成喪亡之釁矣. 我邦地窄力削, 外隣強敵, 徒尚不物之高論, 不知末終之如何, 噫.)”

싸워서 이긴다 한들 칼을 갈며 복수를 다짐하는 상대만 늘어난다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는가. 감당도 못할 꿈같은 소리를 혼자 외친들 누가 듣겠는가. 안타깝게도 중국이나 우리나 여전히 구습을 버리지 못한 것 같다. 선생께서 조선시대에 하신 말씀이 아직까지도 유효하니 답답한 일이 아닌가.

박성진 서울여대 중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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