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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시대의 '로빈 후드'

입력
2020.11.16 04:3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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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알 카포네의 무료 급식소

알 카포네의 시카고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선 대공황시대의 실직자들. U.S. National Archives

알 카포네의 시카고 무료급식소 앞에 줄을 선 대공황시대의 실직자들. U.S. National Archives


1930년 11월 16일 미국 시카고 도심 한 건물 현관에 대형 간판이 내걸렸다. '실직자를 위한 무료 수프와 커피, 도넛'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하얀 앞치마 차림의 급식원들은 입장객 모두에게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하루 세 끼 식사를 제공했다. 연일 수천 명의 실직자들이 장사진을 이뤘다.

하루 평균 2,200여명, 많을 땐 5,000명이 넘는 시민이 거기서 끼니를 해결했고, 그해 추수감사절에는 칠면조 1,000여마리를 요리해 제공하기도 했다. 1,500만명의 실직자를 낳은 1929년 대공황 직후였고, 당시 시카고의 실직 등록자는 7만5,000여명에 달했다. 그리고 시카고는 '1929년 밸런타인데이 대학살'이라 불리는 갱들의 대학살극을 주도한 '공공의 적 1호' 알 카포네 조직의 본거지였다. 구빈원의 운영자 역시 알 카포네였다.

당시 언론 인터뷰에서 한 조직원은 "가난한 이들의 굶주림을 더는 방관할 수 없어 그(big boy)가 나섰다"고, "다른 의도는 없다"고 말했다. 그의 '자선'에 도움을 받은 시민들 다수에게 그는 선한 박애주의자거나 '로빈 후드'였다. 살인교사와 폭력, 탈세, 밀수(밀주) 등 수많은 범죄 혐의로 유죄 선고가 임박했다는 소문이 파다한 때였고, 그가 대중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벌인 일이란 사실도 대부분 알았겠지만, 굶주린 이들에겐 그리 대수로운 게 아니었다.

알 카포네는 1931년 10월 탈세 등 혐의로 11년형을 선고받았다. "재판 결과와 무관하게 급식소는 계속 운영할 것"이라던 알 카포네의 법정 진술과 달리, 급식소는 이듬해 4월 문을 닫았다. 만 7년을 복역하고 출소한 알 카포네는 매독 후유증으로 정신질환을 앓으며 플로리다 팜비치에서 1947년 숨질 때까지 사실상 칩거했다.

시카고 스테이트스트리트 9번가에 있던 그의 무료급식소 건물은 1950년대 철거돼 주차장으로 쓰이다가 근년에 아파트가 들어섬으로써, 범죄자 알 카포네의 대공황시대 17개월의 자선 이력처럼 흔적 없이 사라졌다.

최윤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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