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용석 대한부정맥학회 이사장(서울성모병원 순환기내과 교수)
필자는 맥박이 느린 서맥, 불규칙한 심방세동 등 다양한 부정맥 환자를 진료한다. 그런데 혈압을 자동 측정하는 자동 혈압계를 잘 믿지 않는다. 정확하고 편리하지만 맥박이 불규칙한 부정맥 환자의 혈압을 잴 때마다 다르게 나타날 때가 많아서다. 그래서 직접 환자 맥박을 짚어보면서 혈압을 측정한다.
환자 혈압을 재기 위해 팔을 만지고, 혈압계 커프를 감고, 손목 맥박 변화를 읽고, 혈압 상태를 아는 것은 진료에 중요한 정보다.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환자 옷을 들어올려서 앞가슴의 심장음 청진 위치 5곳의 소리를 들으며, 부정맥이 있는지, 맥박 변화가 있는지, 심장 잡음이 커졌는지 등을 살핀다.
또한 환자를 뒤로 돌아 앉혀서 양측 폐에서 생기는 숨소리를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들으며 심장의 이상 여부를 진찰한다. 진찰을 끝내고 그 결과와 약 처방 등을 알려준 뒤 환자가 눈빛과 자세 등을 통해 이를 이해했는지 확인한다. 이처럼 진료는 모든 오감과 눈치까지 봐가며 진행하는 ‘복합적인 행위’다. 원격 화면ㆍ검사 결과ㆍ병력 청취만으로 진행되는 원격진료가 대면 진료를 절대로 대체할 수 없다.
그러나 부정맥 중 발작성 부정맥은 대부분 1년에 1~5번, 불규칙적으로 발생하고 지속 시간이 20분에서 4시간 정도로 짧아 대면 진료 시 심전도만으로 진단하기 어려운 점이 너무 많다. 24~48시간 생활 심전도 검사(홀터) 등을 통한 검사로도 찾아내기 어려울 때가 대부분이다. 이 때문에 20대 초반부터 부정맥 증상이 나타났지만 진단을 제대로 하지 못해 50년이 지난 뒤에야 진단을 받고 시술한 70대 중반 환자가 있을 정도다.
다행히 부정맥 증상이 나타날 때 가슴과 손가락에 기기를 대면 심전도가 기록되는 휴대용 심전도 검사기도 나왔다. 하지만 값이 30만원 정도로 비싸고, 남들이 보는 앞에서 윗옷을 걷어 올리고 검사하기도 쉽지 않다.
증상이 있을 때 스마트폰에 손가락만 갖다 대면 심전도가 자동으로 측정돼 저장되는 기술이 10여년 전에 개발됐다. 손목시계형 심전도 자동 측정기도 나왔고, 무증상 부정맥을 측정하기 위한 반지형ㆍ팔찌형도 개발 중이다. 하지만 원격의료를 할 수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불법이다.
김윤년 계명대 의대 심장내과 교수팀은 2005년경에 ‘원격 심전도 모니터링 시스템’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지만 무용지물이 됐다. 이 시스템은 스마트폰으로 측정한 심전도를 저장하고, 실시간으로 감시센터에 전송한다. 그러면 의사ㆍ간호사 등 모니터링 센터 의료인들은 전송된 심전도 기록이 위험할 경우 환자 본인이나 119에 알려 환자 건강을 미리 챙기게 한다. 의료진은 환자 상태가 아주 위험하지 않더라도 환자가 모니터링 도중 질문하면 전화로 환자에게 건강 심전도 상태를 알려줄 수도 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원격진료가 대면 진료를 대체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부정맥은 증상이 갑자기 생겼다가 사라지기에 진단이 매우 어렵다. 또한 단순 부정맥 증세만으로 중증도를 알아채기가 쉽지 않다. 증상이 없더라도 갑자기 뇌경색이 오기도 하고, 갑자기 가슴이 답답하다며 돌연사할 수도 있다. 이런 불행한 사태를 줄이려면 적어도 원격 심전도 모니터링을 하는 것만이라도 원격의료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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