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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도 그랬잖아"

입력
2020.11.09 04:30
수정
2020.11.09 21: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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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쟤도 그랬어. 왜 나만 갖고 그래?" 책임져야 할 사람이 그렇게 둘러댈 때 그는 비겁하다. 반성하지 않으므로 그는 여간해선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2020년 대한민국에서 '박근혜스럽다'는 모욕에 가까운 말이다. 지도자가 그렇게 불린다면 더욱. 기이하게도, 문재인 정부 사람들은 '문재인' 옆에 '박근혜'를 자꾸 갖다붙인다. "박근혜도 그랬어. 왜 우리 대통령만 갖고 그래?"

더불어민주당은 '문재인 당헌'을 파기하고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무공천 약속을 뒤집었다. 박범계 민주당 의원은 말했다. "박 전 대통령 탄핵으로 실시된 대통령 보궐선거에 야당도 후보를 냈다." 정부가 우왕좌왕하는 사이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군 총격으로 숨졌을 때 신동근 민주당 의원은 말했다. "박근혜 정부에서도 민간인이 월북하려다 우리군에 사살당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고 주요한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다"는 문 대통령 공약이 빈말이 됐다는 얘기에 청와대 옛 참모는 말했다. "박근혜도 기자회견 별로 안 했다." 20평형대 서울 반포 아파트를 14년 만에 팔아 8억5,000만원을 남긴 것이 시샘을 사자 노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말했다. "아파트 값이 우리 정권에서만 올랐나? 이명박 정권, 박근혜 정권에선 안 올랐나?"

그 겨울 촛불이 끝도 없이 타오른 건 철저한 무능이 지겨워서였다. 박근혜와 '다른' 대통령이 되라는 것, 촛불이 내린 뜨겁고도 명확한 명령이었다. 문 대통령은 태생적으로 다른 대통령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대전은요?"보다 "아이들은요?"가 어울리는 대통령, 잠시 위임 받은 국민주권의 무게를 무겁게 이해하는 대통령.

그런 대통령 근처에 '박'자만 어른거려도 성 내야 할 사람들이 제 잘못으로 곤란해질 때마다 '박근혜'를 끌어다 쓴다. 비판이 성가셔서, 눈속임이 급해서, 다 털어놓고 고개 숙일 만큼 배고프지 않아서, 문 대통령을 탄핵된 대통령과 함부로 견준다. "박근혜 때도 그랬잖아." '내로남불'의 새 버전, 내 잘못을 네 잘못으로 뭉개겠다는 '내불남불'이다.

"박근혜 때와 닮은 구석이 많긴 했지. 어쨌거나 낫긴 했잖아?" 그런 평가에 만족할 심산이라면, 촛불을 욕보이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는 비교 대상이 아니라 압도해야 할 대상이다. 똑같은 잘못을 하고 똑같이 발뺌한다면 왜 '문재인의 정부'여야 하는가. 다를 수 있다는 확신도 없으면서 "문 대통령 비판하면 '이명박근혜 시즌2' 온다"고 겁부터 준 건가.

"지금 제 가슴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들겠다는 열정으로 뜨겁습니다." 촛불 든 사람들은 문 대통령 취임사에 활짝 웃었다. 불리할 때마다 '박근혜'를 불러내 뒤로 숨는 건, 이미 한 번 경험하고 치를 떤 나라로 돌아가자는 퇴행이다.

필수노동자가 밥 먹고 물 마실 시간을 필수적으로 누리는 나라, 용광로에 청년들이 목숨 떨구지 않는 나라, 혐오에 근거한 차별을 법으로 금지하는 나라, 공직자의 부도덕이 정확하게 벌받는 나라, 공적 연금이 지속 가능한 나라, 여성들이 국가 미래보다 자기 미래를 위해 임신·출산을 선택하는 나라.

'충분히 다른' 그런 나라를 향해, 뒤돌아보지 말고, 부끄러운 과거 손가락질하며 눙치지 말고, 부디 진보하시라. 17개월. 문재인 정부에 남은 시간이다.


최문선 정치부장

최문선 정치부장


최문선 정치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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