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물리친 조 바이든 제46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을 맞이하는 북한의 표정은 복잡미묘해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브로맨스'를 자랑하며 북미 정상회담까지 열었던 트럼프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당선인과는 "폭력배" "미친 개" 등 막말을 주고 받은 껄끄러운 사이기 때문이다. 다만 북한은 최근 들어 바이든 당선인을 향한 비난을 삼가는 등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제시할 대북 전략을 지켜보고 북한의 행동 방향을 확정하겠다는 심산으로 읽힌다.
"독재자" vs "미친개"
바이든 당선인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관계는 현재로선 바닥 상태다. 바이든 당선인은 지난해 11월 TV선거광고에서 김 위원장을 '불량배'로 지칭했고 북한은 조선중앙통신 논평을 통해 즉각 "바이든과 같은 미친 개는 몽둥이로 때려잡아야 한다"고 반발했다. 또한 북한은 바이든 당선인에게 "치매 말기" "집권욕에 환장한 늙다리 미치광이"라는 막말도 퍼부었다. 바이든 당선인은 이에 개의치 않고 올해 대선 유세 기간 내내 김 위원장을 "독재자" "폭군"이라고 표현하며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정책을 비판했다.
하지만 '막말 대전'에서 먼저 물러난 건 뜻밖에도 북한이다. 바이든 당선인이 지난 달 22일 미국 대선후보 마지막 TV토론 당시 김 위원장을 '폭력배'(thug)라고 불렀지만 북한은 현재까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최고지도자의 존엄을 중시하는 북한체제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례적 침묵'이다. 북한 입장에선 바이든 당선인이 등판하기 전부터 양측 간 긴장 수위를 높이는 행위를 삼가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침묵하는 北... 바이든 당선 보도 수위 고심중
북한은 바이든 당선인이 승리를 선언한 8일까지 미국 대선과 관련해서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8일 노동신문은 논설을 통해 "우리 공화국은 강력한 전쟁억제력을 갖춘 세계적인 군사강국"이라며 군사력을 과시하는 메시지를 내놓은 게 전부다.
북한 당국은 현재 바이든 당선과 관련한 보도 수위를 놓고 고심중일 것으로 예상된다. 2000년 조지 부시 대통령, 2008·2012년 버락 오바마 대통령, 2016년 트럼프 대통령 당선 당시 각각 2~4일의 시차를 두고 관영매체를 통해 미국 대선 결과를 보도했다. 다만 미국과의 대화가 가능할지에 대한 기대에 따라 보도 논조의 차이가 컸다. 오바마 대통령의 당선 시 북한 매체들은 "공화당을 물리친 후보"라고 수식하며 기대감을 표했으나, 재선 때는 아예 논평을 하지 않았다. 오바마 대통령의 '전략적 인내' 정책에 북측이 크게 반발하던 시기여서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대한 기대가 없었기 때문이다.
대화재개냐, 전략도발이냐 '저울질'
북한이 과거 미국의 권력 교체기에 전략 도발을 감행한 전력을 감안하면 내년 1, 2월에 전략적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다. 다만 북한이 미국 대통령이 바뀌었다고 해서 당장 도발을 감행할 가능성은 낮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북한이 먼저 도발을 감행하면 북미 정상이 싱가포르 회담에서 약속한 북미 대화의 끈을 자르고, 북한의 아픈 추억인 오바마 시대의 '전략적 인내'를 스스로 초래하는 꼴이 된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바이든 당선인에 대한 비난을 중단하고 관망 모드에 들어간 것도 이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바이든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가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와 유사하게 흐를 경우 북한 역시 강경 기조로 변할 가능성이 크다. 특히 바이든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정책 유산인 '싱가포르 북미 공동선언' 폐기를 선언하면 북한도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시험 유예) 파기를 선언하고 실험 재개에 나설 수 있다.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우리 정부가 바이든 당선인이 북미 간 합의를 존중하고 이행할 의지를 보여주도록 설득해야 한다"며 "빠른 시간 안에 문재인 대통령이 바이든 당선인을 직접 만나 대화하고 한미 간 전략적 공조를 해나가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