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다른 팀도 아니고 LG를 제가 우찌 갑니까."
2017년 10월. 삼성 감독에서 물러나 재야에서 1년을 보낸 류중일 감독은 LG 구단 고위층의 영입 제의 전화를 받고 손사래를 쳤다. LG와 삼성은 어떤 관계인가. 재계 전통의 라이벌 의식이 깔려 있던 두 팀은 2012년 3대3 트레이드를 단행하기 전까지 23년 간 선수 거래조차 금기시했다. 모기업이나 구단 내부적으로 그런 규정이 있는 건 아니었지만 분위기가 그랬다.
삼성에서만 30년 동안 선수-코치-감독을 지낸 류 감독은 고민 아닌 고민에 빠졌다. "하루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답을 유보했던 류 감독은 고심 끝에 LG행을 결심했다. 이 같은 내용은 당시 류 감독 영입을 추진했던 LG 관계자의 전언이다.
류 감독은 부임 첫 시즌인 2018년 정규시즌 8위에 그쳤지만 지난해 4위로 3년 만에 가을야구에 나가 준플레이오프까지 진출했다. 마지막 시즌인 올해도 4위로 마감한 뒤 준플레이오프로 마무리했다. 성적은 똑같았지만 평가는 180도 달랐다. 지난해엔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갈 희망을 봤다면 올 시즌은 목표 달성 실패다.
처음부터 큰 부담을 안고 시작한 시즌이었다. LG 구단 창단 30주년을 맞아 한국시리즈 진출이 류 감독의 재계약 마지노선으로 기정사실화 됐고, 물러날 곳 없는 류 감독도 정규시즌 2위를 바라보며 배수의 진을 쳤다. 거의 손에 잡을 뻔했던 목표는 마지막 2경기를 그르치는 바람에 물거품이 됐다. 특히 한화전 치명적인 역전패를 두고 모기업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낸 것으로 알려졌다. 분위기가 급격히 가라앉은 상태에서 시작한 가을야구에서 반전은 없었다. 마지막 상대가 두산이었다는 점도 류 감독에겐 큰 오점이었다. 그는 준플레이오프 패배 후 기자회견에서 "삼성에서도 마지막에 두산에 졌고, LG에서도 두산을 넘지 못했다"며 통한의 아쉬움을 곱씹었다.
목표엔 못 미쳤지만 재임 기간 두 번의 가을야구를 이끌었으니 실패라고 할 정도는 아니다. 3년간 정규시즌 승률 0.523(226승 6무 200패)은 LG에서 마지막 우승 감독인 이광환 감독(0.541)에 이어 두 번째로 높다. 지난친 주전 위주의 야구와 결과적인 투수 교체 실패로 아쉬움을 남겼지만 삼성에서처럼 베테랑과 코치들을 존중하는 '덕장'의 면모로 선수단의 신망이 높았다.
"먼저 떠나는 것이 맞다"며 지난 6일 사의를 표한 류 감독은 류지현 수석코치, 황병일 2군 감독과 작별의 소주잔을 기울이며 3년 전 어렵게 택한 여정을 마무리했다. 삼성과 결별하는 심정으로 롱런을 꿈꿨을 LG에서의 새 도전이 너무 짧게 막 내린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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