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라이프] 언택트 달서하프마라톤대회 참가해보니...
지난 9월 사무실로 이름이 적힌 번호표와 마스크, 안내책자 등이 담긴 택배가 도착했다. 신청해놓고 잠시 잊고 있었던 달서하프마라톤대회 물품이었다. 갖은 이유와 일을 핑계로 완주를 미루다 어느덧 대회 마지막 날에 이르렀다. 평일 저녁 체육회 사람들과 함께 뛰자는 이야기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도저히 일정이 맞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기 전 서울, 부산, 대구 등지에서 열리는 마라톤 대회 10km 코스에 꾸준히 참가하면서 완주 기념품과 티셔츠를 수집하기도 했다. 집 근처 학교 운동장 달리기를 비롯해 앞산, 와룡산을 수시로 오르면서 나름의 체력을 관리해왔지만, 바깥 활동이 제한된 상태에서 불어나는 몸무게는 감당키 어려운 지경이 됐다.
한 때 철인3종 경기를 완주하겠노라 주변 사람들에게 큰소리를 치고 다녔다. 달리기, 수영, 사이클 등을 호기롭게 시작했지만 이런저런 핑계가 들어서면서 결심이 오래가지 못했다. 지금도 언젠가는 완주를 하겠다는 목표를 가슴 속에 품고 있지만 먼훗날의 이야기다.
전국 어디서나 인증만 하면 되는 언택트 마라톤
이번 달서하프마라톤대회는 언택트(비대면)으로 치러졌다. 전국을 비롯해 세계를 뒤덮고 있는 신종 코로나 탓이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뛰는 축제 같은 분위기는 낼 수 없었지만, 완주코스는 참가자가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기록 측정이 가능한 장비를 이용해 5㎞, 10㎞, 하프코스 등 신청한 종목 거리만큼 달린 후 인증하면 됐다.
코스는 최근 억새풀이 만발해 있던 대구 달서구 대명유수지로 정했다. 대명유수지는 최근 데크로드가 완공되면서 대구 시민들의 새로운 명소, 휴식처로 떠오르고 있는 곳이다.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도 이 곳을 방문한 뒤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환경부 멸종위기종 2급으로 지정된 맹꽁이가 집단 서식하고 있어 생태적으로도 보존 가치가 높은 곳이다.
지난달 17일 완주를 위해 찾은 대명유수지 인근에는 오래간만의 가을 분위기를 만끽하기 위한 가족, 친구, 연인들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었다. 시민들은 마스크를 쓰고 대명유수지 억새풀과 제방길 너머 달성습지 등 주변 경치를 감상하며 산책을 하고 있었다. 신종 코로나 속에서도 찾아온 모처럼의 가을이 반가운듯한 기색이었다.
대명유수지와 달성습지 제방길, 강창교를 돌아 성서산업단지, 한국지역난방공사 등을 지나 출발지로 돌아왔다. 딱히 코스를 정해놓지 않아 처음엔 대명유수지를 여러 번 반복해 돌면서 10㎞를 달리려고 했지만, 제방길을 따라 뛰다 보니 어느새 강 너머 강정보와 디아크문화관, 공사 중인 고가도로가 눈에 들었다. 강창교를 돌아 다시 출발지로 돌아오니 정확히 10㎞가 나왔다. 코스를 따라 뛰는 동안 가슴에 5km 번호표를 달고 뛰는 모자를 비롯해 참가자들의 모습이 심심찮게 보였다. 반가운 마음이었다.
경쟁자 없지만 어플리케이션으로 서로를 응원
앞서거니 뒤서거니 먼저 뛰어가는 경쟁자도 없이 혼자 뛰다 걷다를 반복했다. 선선한 바람과 따뜻한 햇살에 연신 휴대폰 카메라로 주변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기록은 계속해서 지체돼 갔다. 기록보다는 완주에 의미를 뒀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최종 기록은 1시간 7분 4초. 시간과 거리는 휴대폰 어플리케이션으로 측정했다. 1시간 이내 들어오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지만 그 동안 운동을 게을리 한 것 치곤 나름대로 결과가 좋게 나온 듯 했다.
완주 인증을 하는 어플리케이션에는 참가자들이 저마다 각자의 코스에서, 각자의 지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기록을 인증했다. 대구뿐만 아니라 서울, 전북, 부산, 대전 등지의 참가자들도 눈에 띄었다. 참가자들은 ‘간만에 제대로 달렸다’, ‘코로나 이기고 마라톤도 힘내서 달리자’ 등 응원의 목소리를 남겼다. 신종 코로나 속에서 열린 마라톤 대회는 이렇게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올해로 14회째를 맞은 달서하프마라톤대회는 매년 8,000여명이 참여할 정도로 대구 대표 마라톤 대회로 자리잡고 있다. 올해는 신종 코로나 탓에 지난 9월 27일부터 10월 17일까지 언택트로 치러졌다. 전국 지자체에서 주최한 첫 언택트 마라톤 대회였다. 참가자는 총 1,222명이었다.
달서구와 달서체육회는 참가자 1,222명이 낸 참가비 1만원, 총 1,222만원을 이웃사랑 후원금으로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했다. 경희알미늄과 한국지역난방공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후원금은 올 연말 지역 내 소외된 이웃들을 위해 지원될 계획이다.
언택트 아닌 온택트 마라톤 대회를 다시 여는 그날
‘언택트’ 달서하프마라톤대회는 유례없는 신종 코로나 시대 새로운 마라톤 대회의 방식을 제시했다. 추가 감염 확산을 막음과 동시에 지쳐있던 시민들에게도 잠시나마 여유를 제공할 수 있었다는 좋은 평가를 얻었다. 하지만 참가자들은 이 같은 언택트 방식의 마라톤 대회는 더 이상 치러지지 않길 바라고 있다. 마라톤 대회만이 가지는 시끌벅적한 분위기와 색다른 매력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들 중 하나기 때문이다. 모처럼 찾아온 마라톤 대회가 반갑기도 했지만,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함께 뛰는 마라톤 대회 본연의 맛이 사라진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완주를 마치고 뛰느라 미처 온전히 감상하지 못했던 주변 풍경을 다시 바라봤다. 드론을 띄워 하늘에서 대명유수지와 달성습지, 성서공단을 한 눈에 담았다. 대명유수지의 억새풀은 햇빛에 반사돼 마치 흰 눈이 쌓여있는 듯했다. 잠깐의 여유를 즐기는 시민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 동안 신종 코로나로 인해 함께 마음 고생한 힘든 시간들이 언젠가 보상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다. 확산세가 하루 빨리 줄어들고, 함께 고생한 국민, 의료진,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코로나 종식을 외칠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바랄 뿐이다.
신종 코로나 확산 초기 직격탄을 그대로 맞았던 대구경북은 이제 조금씩 안정세를 찾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전국적으로는 세자리 수 이상의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다. 최근 사회적 거리두기 방침이 다소 완화됐지만, 대구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마스크 착용과 각종 방역 수칙 준수에 동참하고 있다.
한 때 '폐쇄'라는 말까지 나돌았던 대구는 이제 천천히, 조심스럽게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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