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자성 부인 등 라이더 문제 심각해??
알고리즘 일감 배정 등 노동조건 악화?
?라이더 협상력 강화할 사회계약 필요
편집자주
매주 수요일과 금요일 선보이는 칼럼 '메아리'는 <한국일보> 논설위원과 편집국 데스크들의 울림 큰 생각을 담았습니다. 한국일보>
소설가 복거일(74)이 2006년 발표한 ‘보이지 않는 손’은 자유시장의 효용성을 설명하는 애덤 스미스의 경제학 개념을 제목으로 차용한 자전소설이다. 소설 첫머리에 주인공은 오토바이를 탄 퀵서비스 기사가 자신의 옆을 빠르게 지나가자 “‘퀵서비스’는 자본주의의 활력을 상징하는 것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것은 화물 운송 시장에서 용케 틈새를 찾아 내서 돈을 벌고 그 과정에서 사회의 효율을 높이고 있었다. 어떤 정부 기구가 그것을 생각해 낸 것이 아니었다”고 찬사를 보낸다.
한 소설가로부터 10여년 전 자유시장의 실핏줄 같은 존재로 칭찬받았던 게 퀵서비스다. 이후 퀵서비스 기사가 주문을 받는 수단이 삐삐나 무전기에서 스마트폰으로, 주력 배달 상품이 작은 화물에서 음식으로 바뀌는 변화는 있었지만 이제 퀵서비스는 일상생활의 일부가 됐다. 시장 규모도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음식 주문을 중개하는 어플리케이션 ‘배달의 민족’에는 매달 1,000만명이 방문하고 5,000만건의 주문이 오간다. 이런 온라인 플랫폼은 수요(소비자)와 공급(음식점)을 실시간 맞춤형으로 연계해 주기 때문에 혁신적이라는 칭찬까지 받는다. 하지만 플랫폼을 통한 음식 배달 산업을 지탱하는 퀵서비스 기사들, 우리가 ‘라이더’라고 부르는 이들의 노동 현실은 우울하기 짝이 없다.
문제의 핵심은 근로자로서의 정체성이 부정된다는 점이다. 라이더들은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자신들의 서비스를 평가ㆍ관리받고 그에 따라 물량을 배정받는다. 플랫폼 기업으로부터 사실상 노무 지시와 통제를 받지만 이들은 자영업자로 간주된다. 반면 플랫폼 기업들은 최대한 사용자의 책임을 회피하는 것으로 이윤을 불린다.
대표적인 게 산업재해다. 사용자가 져야 할 책임을 회피하는 플랫폼 기업 때문에 라이더들은 산재 위험 부담을 스스로 떠맡는다. 올해 상반기에만 오토바이 교통사고로 265명이 사망했을 정도로 위험하지만, 라이더 90% 이상은 산재 보험 미가입자다. 2017년 라이더도 특수고용노동자 산재가입 특례 업종(퀵서비스 늘찬배달업)으로 지정됐지만 사업주가 100% 보험료를 내는 임금근로자와 달리 보험료 절반을 라이더들이 내야 한다. '적용 제외'라는 독소 조항까지 있어 가입률은 극히 낮다. 단체행동을 통해 불합리한 노동조건을 개선하는 일도 쉽지 않다. 사무실이나 공장에 함께 모여 일하는 형태가 아니라 노조를 만들기도 어렵고, 힘들게 노조를 조직해도 플랫폼 기업들은 교섭에 무관심하다.
최근에는 주문콜 배당, 근무 평가 같은 라이더들의 근무 조건을 알고리즘에 맡길 수 있느냐가 노동계의 관심사다. 지난 3일 라이더들은 올 초부터 시행된 플랫폼 기업의 인공지능(AI) 알고리즘 배차 문제를 제기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주목을 끌었다. 이들은 AI가 오토바이가 진입할 수 없는 곳으로 배차하거나, 산이나 도로 같은 실제 지형을 고려하지 않고 직선거리로 추산한 배달시간을 강제했다고 주장했다. 원인도 알려주지도 않고 낮은 근무평점을 줘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플랫폼 노동자들을 옥죄는 평판 알고리즘에 대해 “지옥에서 온 상사(上司)다. 언제든지 충동적으로 해고할 수 있지만 거기에 대해 항의도 할 수 없는 변덕스럽고 성질이 고약하며 설명할 수 없는 관리자”라고 한 과학저술가 톰 슬리의 비판은 그래서 통찰력이 있다(제레미아스 아담스-프라슬 ‘플랫폼 노동은 상품이 아니다’ 재인용).
근로자로서의 정체성이 부정되고, AI 알고리즘이 정한 근무 조건을 따를 수밖에 없는 라이더들, 더 나아가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들에 대한 보호 방안 마련은 시급하다. 이들의 협상력을 강화해 줄 새로운 사회계약 체결 역시 시대적 과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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