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 쇼크' '약물 부검' 검색…동반자살 아닌 살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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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사 쇼크' '약물 부검' 검색…동반자살 아닌 살인이 보였다

입력
2020.11.09 05:50
수정
2020.11.09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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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의 첨병, 프로파일러의 세계] 
<7> 부천 링거 살인사건

편집자주

범죄 드라마나 영화에서 '초능력자'처럼 등장해 범죄자의 감정선을 무너뜨리는 프로파일러. 그러나 실제 프로파일러는 끊임없이 범죄자 심리나 행동패턴을 분석해 범행의 이유를 찾는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월요일마다 범죄 현장 뒤에서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는 프로파일러의 세계를 조명합니다.


기사와 관련 없는 링거 이미지. 게티 이미지뱅크.

“동반자살은 분명 아니었어요. 슬픈 감정이 없었거든요. 문제는 물증이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이걸 살인인지를 증명하냐는 거였죠.”

9일 경기남부경찰청 소속 프로파일러 신경아 경사는 2018년 ‘부천 링거 살인사건’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 사건 발생 당시엔 살인임이 밝혀지지 않아 ‘부천 동반자살 사건’으로 알려졌던 사건이었다. 신 경사는 “심증은 있지만 실제 우리가 가진 거라고는 ‘진술’뿐인 상황이었다”며 “말(言)을 파헤치고 해석하는 데 모든 수사팀이 매달렸다”고 회상했다.

여자친구 "동반자살 시도" vs 유가족 "자살 아냐"

지난해 9월 A씨의 유가족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청원글. A씨의 가족은 "희망 섞인 미래에 대해 얘기하던 남동생을 기억한다"며 "그런 남동생이 두 눈도 조차 감지 못하고 죽은 억울함을 꼭 풀어주고 싶다"고 적었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1ㆍ2심 판결문으로 구성해 본 사건의 경위는 이렇다. 2018년 10월 20일 오후 10시 30분쯤. 경기 부천시 한 모텔에서 사망 신고가 들어왔다. 신고자는 사망자 A씨의 여자친구 박모(33)씨. 박씨는 119에 8번, 112에 1번 신고했다. 경찰관들이 현장에 갔을 때 A씨는 사망한 채 침대에 누워 있었고, 박씨는 옆에서 넋이 나간 채 앉아있었다. A씨의 사인은 항염증제 중독. 박씨는 수년 차 경력의 간호조무사였다.

박씨는 “동반자살을 하려고 A씨에게 먼저 링거를 놓은 후 스스로에게도 놓았는데, 나 혼자 깨어났다”고 설명했다. 이어 “A씨가 프로포폴 부작용으로 발작을 일으키며 내 몸에 꽂은 주삿바늘이 뽑힌 것 같다”고 덧붙였다. 결혼을 앞두고 A씨가 극심한 경제적 스트레스를 호소해 극단적 선택에 이르게 됐다고 했다. 둘은 약 2년간 만난 사이였다.

일단은 일반 변사 사건으로 이를 접수한 경찰은 이내 혼란에 빠졌다. A씨의 유가족은 "자살할 이유가 없다"며 억울함을 토로했다. A씨에게 빚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2017년부터 개인회생절차 개시명령을 받았고, 이미 1,440만원을 변제한 상태였다. 통장 잔고가 마이너스로 떨어진 적도 없었다. 자살 동기부터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게 가족의 주장이었다. 유가족은 청와대 국민청원게시판에 이런 내용의 호소문을 올렸다.

사망 장소에 함께 있던 박씨에게 의심스러운 구석이 있었지만, 박씨는 여전히 수사관을 만날 때마다 “내가 같이 갔어야 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일단 박씨가 살해를 했을 것이라는 동기나 정황은 나오지 않았다. A씨의 죽음으로 보험금을 탈 수 있다는 등 박씨가 죽음으로 금전적 이득을 본 상황도 아니었다. 폐쇄회로(CC)TV 증거나, 살인계획을 담긴 메모 등도 없었다. 실제 박씨의 몸엔 주삿바늘 흔적이 남아 있었고, 자해 흔적 등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정황도 있었다. 박씨는 사건의 충격으로 정신과병원에 입원했다.

"자살일 리 없다"는 유가족과 "동반자살이었다"는 박씨의 말이 정면으로 배치됐다. 수사팀이 박씨의 휴대폰에서 ‘항염생제 부작용’ 등 약물로 사람을 사망케 하는 방법을 검색한 기록을 찾아내긴 했지만, 이는 동반자살을 위한 검색일 수도 있었기에 살인을 직접적으로 가리키는 증거는 아니었다. 명확한 ‘한 방’이 나오지 않은 채 사건은 맴돌았다.

1차 진술 살펴보니 약점이 보였다

1심 판결문에 적시된 증거 목록의 일부. 신 경사가 작성한 진술평가서(빨간 네모)가 채택돼있다. 이후 신 경사는 보고서의 신빙성 검증을 위해 1심 재판에 직접 증인으로 출석하기도 했다. 판결문 캡처


사건 협조 요청을 받은 신 경사는 물증이 아닌 진술만 있는 이 사건을 뒤덮고 있는 ‘말’들을 차근차근 따라가보기로 했다. 가장 먼저 박씨의 1차 진술서를 봤다. 박씨의 진술을 수사관이 재해석해 정리한 수사보고서가 아닌, 박씨의 육성이 그대로 담긴 ‘오염되지 않은’ 진술이었다. 신 경사는 “수사관이 재정리를 하면 필연적으로 판단에 따른 ‘편집’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며 “진술 분량, 감정표현에 쓰는 어휘, 무의식적으로 쓰는 뉘앙스 등이 달라질 수 있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박씨의 진술서에 가장 두드러지는 특징은 분량의 차이였다. 박씨는 A씨와 극단적 선택을 하던 10월 20일 저녁 상황을 A4 한 장 분량에 빼곡히 적었다. 어떤 약물을 투여했고, 몇 초 뒤 A씨가 잠들었으며, 약물을 어떻게 배합해 어느 위치에 주사기를 꽂았는지 등을 상세히 설명했다. 이후 스스로에게 주삿바늘을 꽂는 장면도 마치 그림을 그리듯 세세히 묘사했다. 그러나 A씨와 극단적 선택을 결심하게 된 과정은 한 줄뿐이었다. “경제적으로 힘들어서.” 신 경사는 이 지점에서 ‘동반자살이 아닐 것’이라는 직감을 받았다고 한다.


“사람이 없는 사실을 지어내 말로 표현할 수는 있죠. 하지만 거짓을 지어낸 말과, 사실을 서술한 말은 분명히 다를 수밖에 없어요. 거짓말은 어딘가 부족하거나 과장돼요. 사건 현장에 대한 서술은 확실한데 동반자살 경위에 대한 설명이 부족했다면, ‘링거로 사망케 한 것은 사실이지만 동반자살은 거짓이다’라는 결론이 나오죠. 즉, 살인일 가능성이 높았다는 이야기입니다.”

물론 프로파일러의 ‘감’만으로 혐의가 확정되진 않는다. 경찰청은 수사에서 과학적 진술 분석 기법(SCAN) 등을 적극 활용한다. 대명사 활용이나 연결어구 적절성 등 9가지 요소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진술의 신빙성 등을 평가하는 기법이다. 1987년 이스라엘에서 개발돼 전 세계적으로 쓰이고 있다.

이 분석결과 자체가 유무죄를 가늠하지는 않지만, 이후 수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나침반 역할을 한다. 박씨의 진술은 이를 포함한 다양한 기법을 적용한 결과 거짓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됐다. 이런 내용을 담은 보고서는 법원에서 적법한 증거로 채택됐다.

흩어진 말 시간순 정리… '범행 동기' 꼬리 잡혀

휴대폰 검색 이미지. 게티 이미지뱅크

동반자살이 아닐 가능성을 확인한 신 경사의 다음 관심사는 살해 동기였다. 신 경사의 선택지는 흩어진 말들을 시간 순으로 배열하는 것이었다. 박씨가 사건 전에 했었던 말들을 따라가다 보면 실마리가 나올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신 경사는 수사팀으로부터 그간 수사를 통해 박씨의 휴대폰 검색 기록과 대화 내역, 참고인 진술 등을 전부 넘겨 받아 시간 순으로 배열했다.

가장 눈에 띄는 건 검색 시간이었다. 박씨의 검색 기록은 사건 발생 즈음에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사건 발생 17시간 전인 20일 오전 5시부터 오후 9시까지 검색어 수는 수백개에 달했다. 검색 내용에는 ‘주사쇼크’ ‘죽음’ ‘항염생제 부작용’ 등이 포함됐는데, 3~5초에 한번씩 검색을 했다. 이를 정리한 보고서가 A4용지 서너장을 넘어갈 정도였다. 박씨는 한달 전만 하더라도 한두 시간에 한 번씩 ‘드라마 무료보기’ 정도만 검색할 뿐이었다. 신 경사는 검색량이 급증한 시점의 첫번째 검색어가 살해동기일 수 있다고 직감했다.

유의미해 보이는 검색의 시작일은 사건 전날인 10월 19일. 그 검색어는 한 술집의 이름이었다. 박씨는 이때부터 오전 2시50분까지 초 단위로 술집의 이름을 수백 건 검색했다. 같은날 오후 3시부터 오후 8시까지는 ‘13만원 계좌 이체’ ’오피단속 혹시나 했는데’ ‘오피단속 걸리면’ ‘남친 성매매’ ‘유흥탐정’ 등으로 검색어가 옮겨갔다. 이는 다음날 오전 5시부터는 점심·저녁식사 시간도 거른 채 ‘프로포폴’ ‘항염생제’ ‘주사방법’ ‘주사 부작용’ ‘쇼크’ 등으로 넘어갔고, 사건 발생 한 시간쯤 전엔 ‘약물 부검’ ‘주사 쇼크 부검 결과’ 등으로 바뀌었다.

살인으로 명확한 결론을 내지 못한 상태에서 경찰로부터 사건을 넘겨받은 검찰은 집착·충동적 성향을 가진 박씨가 A씨의 외도를 의심해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 박씨를 살인·횡령 혐의로 기소했다. A씨가 술집에서 13만원을 사용한 것을 '남자친구의 성매매'로 단정하고 충동적 분노를 이기지 못해 병원에서 빼돌린 약물을 활용, 이같은 범행을 저질렀다는 것이 수사기관의 결론이었다. 신 경사는 “검색 시간대를 보면 박씨가 식사와 수면을 모두 끊은 채 발작적으로 살인 충동에 휘말인 것으로 판단된다”고 정리했다.

박씨에 대한 심리평가를 진행한 담당 정신보건임상심리사는 8가지 심리검사로 교차검증한 결과 충동적 행동과 감정 폭발이 일어날 수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유가족들은 박씨가 그 전에도 A씨의 휴대폰 비밀번호나 계좌 정보를 전부 받아두는 등 집착적 성향을 보였다고 진술했다. 박씨가 사건 전날 지인을 만나 "A씨를 죽이려 한다"고 말했다는 참고인 진술과, A씨의 자살 동기가 전혀 없었던 점, 박씨의 체내에서 약물이 극소량만 검출됐다는 부검결과도 판단 근거로 쓰였다.

인천지법 1심 재판부와 서울고법 2심 재판부는 모두 박씨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2심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6부(부장 오석준)는 9월 11일 형을 선고하며 "박씨는 냉혹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피해자와 동반자살을 시도했지만 자신만 살아남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등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고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김현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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