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업체를 운영하는 정모(46)씨는 최근 받은 건강검진에서 ‘비알코올성 지방간’ 진단을 받았다. 술을 마시지 않아 지방간이 있을 거라곤 전혀 생각도 못했다. 알고 보니 늘어난 뱃살이 원인이었다. 일감이 몰릴 때마다 배달 음식으로 식사를 해결한 게 문제였다. 게다가 급하게 먹고 다시 앉아 일하기 바빠서 운동은 남의 일이 된 지 오래였다. 그 결과 정씨의 체질량 지수(BMI)는 27.1㎏/㎡로 비만이었고, 허리둘레도 101㎝로 복부 비만이 심각했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방치하면 간염으로 악화할 수 있다는 의사의 말에 정씨는 식단 개선과 운동을 통해 체중 관리에 들어갔다.
정씨의 경우처럼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데도 고지방 위주의 식사와 운동 부족 등 비만을 부르는 생활습관으로 인해 간에 지방이 침착되는 질환을 ‘비알코올성 지방간’이라 한다.
식습관이 점차 서구화되고 앉아서 생활하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국내 남성의 비알코올성 지방간 유병률은 지난 19년 새 11%p나 증가했다. 가파른 증가세를 고려하면 10년 뒤엔 우리나라 남성 5명 중 2명(39.1%) 꼴로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앓게 될 거란 암울한 전망이 최근 제시됐다.
서울아산병원 박혜순(가정의학과)강서영(국제진료센터) 교수팀은 국민건강영양조사(1998~2017년)를 바탕으로 비알코올성 지방간과 비만, 복부 비만의 국내 유병률 추이를 분석한 뒤 각 질환의 향후 유병률을 예측했다. 국내 남성의 비알코올성 지방간 유병률은 1998년 19.7%였던 데 비해, 지난 19년 간 11%p 상승해 2017년에는 30.7%에 달했다.
연구팀이 조인포인트 모델(joinpoint model)을 이용해 향후 비알코올성 지방간 유병률을 예측한 결과, 2030년에는 39.1%, 2035년에는 43.8%의 남성이 비알코올성 지방간일 될 것으로 파악됐다.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방치하면 간경변증과 간암으로 악화할 수 있고, 심하면 간이식을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위험해질 수 있다.
국내 남성의 비알코올성 지방간 유병률이 꾸준히 증가할 걸로 분석됨에 따라 주요 원인인 비만을 유발하는 생활습관을 조기에 개선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번 연구의 분석 인원은 19세 이상 성인 4만여명(남성 1만870명, 여성 3만78명)으로, 이전에 간염이나 간경변과 같은 간질환을 앓은 적이 없으며 1회 알코올 섭취량이 30g 이하로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1998~2017년 사이 남성의 평균 BMI는 22.9㎏/㎡에서 24.5㎏/㎡로 2㎏/㎡ 정도 늘었다. 평균 허리둘레도 81.9㎝에서 86.1㎝로 4㎝가량 증가했다.
BMI가 25㎏/㎡ 이상이면 비만, 허리둘레가 90㎝ 이상이면 복부 비만이다. 이에 따른 비만 및 복부 비만인 남성의 비율은 지난 19년 새 각각 17.5%p(22.3%→39.8%), 15.4%p(17.8%→33.2%) 늘었다.
비만과 복부 비만 남성의 비율이 늘어난 데는 생활습관 변화가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지방 섭취가 하루 전체 에너지 섭취량의 30% 이상인 남성의 비율도 19년 전보다 두 배 정도 많아졌고, 신체 활동량이 부족한 남성의 비율도 현저히 증가했다.
2035년이 되면 비만하거나 복부 비만이 있는 남성 비율은 각각 65.0%, 52.5%에 달할 것으로 전망됐다. 문제는 19~49세의 젊은 남성에서 비만한 사례가 급격히 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추세가 이어지면 2035년에는 20~40대 남성 가운데 74.5%가 비만, 60.0%가 복부 비만, 58.5%가 비알코올성 지방간을 겪을 것으로 예측됐다.
박혜순 교수는 “비알코올성 지방간은 지방만 침착되고 간 손상은 없는 경미한 경우가 많지만,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간세포가 손상되는 간염과 간이 딱딱하게 굳는 간경변증, 간암으로 악화할 수 있다”고 했다. 박 교수는 “비만 예방을 위해 섬유질이 풍부하면서 지방 및 단순당 함유량은 적은 채소와 단백질이 많은 생선 등을 섭취하고, 틈틈이 운동해 신체활동량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 ‘임상의학저널(Journal of Clinical Medicine)’ 최근호에 게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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