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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이 분명하게 정리해야

입력
2020.11.05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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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희
이준희한국일보 고문

제도적 검찰개혁은 이미 이행 중
지금 개혁 주장대로면 또 정치검찰
명분과 원칙대로 反개혁 차단하길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예전 MB정권에서 민간인사찰 사건이 있었다. 검찰이 피의자인 청와대·총리실 관계자들에게 수사상황을 은밀히 알리고 대비토록 한 정황은 충격적이었다. 그때 '검찰 개혁 없이 미래 없다'는 칼럼을 썼다.

'검찰의 자체 개혁을 줄곧 촉구해 왔으나, 이제 부질없는 미련을 깨끗이 접는다…더 이상 검찰 스스로에 기대할 게 없으니 답은 외부 강제에 의한 검찰권의 대폭 축소와 분산, 인사 독립밖에는 없다’고. 결론을 독하게 맺었다. ‘법질서 확립을 통한 사회정의의 수호가 국가가 검찰에 부여한 사명이다. 이 정의 수호자를 죽여야 정의실현이 가능해진 현실이 기막히지 않은가.’ 이게 8년 전이다.

검찰 개혁 논의가 시작된 것은 훨씬 전이다. YS정부 이후 매 대선 때마다 여러 개혁 방안이 유력 후보들의 공약으로 제시됐다. 검찰의 과도한 권한을 분산하고 정치권력으로부터의 독립을 보장하자는 취지는 같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에 자율권을 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검경수사권 조정과 공수처 설치를 밀어붙이지 못한 것이 정말 후회스러웠다”고 자탄했듯 핵심은 이 두 가지 제도개혁이었다. 자연스럽게 문재인 정부는 이를 국내 정책의 제1목표로 삼아 드라이브를 걸었다.

사안이 얽히면 뭐가 뭔지 모르게 된다. 특히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조자룡 헌 칼 쓰듯 아무데다 개혁 명분을 휘둘러대는 바람에 많이들 착각하고 있다. 강력한 검찰개혁론자 입장으로 말하건대, DJ와 노무현이 구상한 수준의 개혁 목표는 얼추 달성됐다. 과정이 편법과 꼼수로 얼룩지긴 했으나 어쨌든 지난해 말 관련법이 통과돼 연말 연초 쯤 공수처가 발족할 것이고, 검경수사권을 대폭 조정한 형사소송법 등도 함께 시행될 것이다.

예까지 오는데 20여년이 걸린 걸 생각하면 이만 해도 역사적인 일이다. 물론 공수처나 조정된 수사권의 운용과정에서 기관 간 관계 설정, 권한 다툼, 법적 허점 등의 문제들이 노정될 것이다. 이를 보정해가면서 국가수사기관들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 개혁을 완성해가는 진짜 지난한 작업이다.

그러므로 이 시점에서 추 장관을 비롯한 집권 진영이 입에 달고 사는 검찰 개혁 용어는 뜬금없고 심지어 도착적이다. 거론키도 지치지만 뻔한 정실인사에, 현직 총장에 대한 잦은 지휘권 발동과 공개 망신주기 따위는 검찰 개혁과는 아무 관련 없는 정파 행위다. 정치권력으로부터의 검찰권 독립 취지와는 대척점에 있다는 점에서 도리어 반(反)개혁적이다. 이런 검찰이라면 군사정권 이래의 정치검찰과 하나 다를 게 없다. 공수처의 정치 종속도 괜한 걱정이 아니다.

이 난맥을 정리할 책임과 힘을 가진 단 한 사람은 문재인 대통령이다. 18대 대선부터 공언해 온 필생의 숙원이 흙탕에 오염되고 있는데도 몇 달째 오불관언의 태도는 도무지 납득하기 어렵다. 당위적 명분과 정치적 이해 사이의 부조화 때문에 난감한 상황임을 이해해도 더는 피해가서는 안 되는 중대사안이다. (굳이 덧붙이자면 서울·부산시장 불출마 번복 건도 마찬가지다)

그래도 노 전 대통령이 지금껏 평가받는 가장 큰 이유는 현실적 유불리 계산보다 원칙을 앞에 둔 진정성 때문이다. 이 정권에 대한 많은 이들의 실망도 대개는 집권 전의 지순한 언명과 집권 후의 실제 행동이 완연히 다른 언행불일치에서 비롯된 것이다.

보수 쪽의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라는 반어법적 비아냥에는 아직까지 동의하지 않는다. 마치 이전이 더 나았다는 투이므로. 그러나 정권이 검찰을 다루는 인식에 관한 한 적어도 늘상 지겹도록 경험해 온 나라인 것은 맞다. 대통령의 조속하고도 분명한 정리를 기대한다.





이준희 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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