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일이지만 나는 숲과 완전히 일치되어 일주일을 지낸 경험이 있다. 내가 미국 아이다호대학의 교환교수로 머물며 이 대학의 원생지연구센터(Wilderness Research Center)에서 교양과목으로 개설한 ‘비전 퀘스트(Vision Quest)’란 과목을 청강하면서 얻은 경험이다. ‘비전 퀘스트’는 원래 몇몇 미국 원주민들이 전통적으로 수행해 온 남자들의 성인 통과의례였다고 한다. 이들이 마을에서 성인으로 역할을 하려면 집을 떠나 숲으로 가서 얼마동안 지내며 그들의 신에게 기도하고 삶의 목적에 대한 계시를 받은 후 돌아와야 했다고 한다. 그런 다음 계시에 따라 직업을 갖고 또 마을 공동체를 위한 삶을 살아갔다고 한다. 이런 전통을 현대의 삶, 특히 대학생과 교직원들에게 알맞도록 만든 ‘비전 퀘스트’ 프로그램이었다.
‘비전 퀘스트’의 핵심은 숲과의 일치다. 그러기 위해서 참여자들에게는 현대인들에게 익숙한 전자기기, 안락한 잠자리, 음식, 동반자 등이 금지된다. 단지 숲에서 몸 하나를 지탱케 하는 텐트와 배고픔, 그리고 고독과 그리움이 전부다. 물론 이런 체험을 위해서는 긴 준비가 필요했다. ‘비전 퀘스트’에 대한 이론이나 필요성 등의 정신적인 준비는 물론이고 단식과 홀로 지낼 수 있는 육체적인 준비가 몇 달 전부터 시작되었다.
드디어 ‘비전 퀘스트’의 첫날 숲에 도착한 참여자들은 가장 먼저 아늑한 자신만의 지낼 곳을 찾는 일이었다. 일주일간 완벽한 홀로의 삶을 살아야 했기 때문에 통상 사방 1마일 (1.6㎞) 각자의 간격을 유지하여 지낼 곳(solo site)을 찾는 게 원칙이었다. 나는 작은 연못이 있고 전나무로 둘러싸인 양지바른 곳을 찾아 지도에 표시해 두고 돌아왔다.
그날 밤 참여자들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자신이 선택한 solo site의 느낌을 서로 나누며 다음날 아침에 일주일 홀로의 삶을 떠날 서로를 위해 기도와 격려로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아침 따뜻한 차 한잔과 포옹 후 각자의 길로 떠났다.
원생지의 숲에서 일주일을 홀로 보내며 나와 가족, 친구, 공동체, 인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다. 현대 물질문명의 편안함에 익숙했던 나는 불편함과 불안을 느꼈다. 엄습해 오는 고독과 그리움, 공포와 싸워야 했다. 특히 밤이면 동물들의 움직임이 가까이서 내게 다가오는 듯 느껴졌고 조그만 소리에도 온몸에 소름이 솟을 정도로 극도의 공포감을 맛보아야 했다. 때론 따사로운 햇살을 완전한 맨몸으로 느끼기도 했다.
홀로 지낸 둘째 날, 느껴지는 배고픔은 고통이었다. 꿈속에서 조차 음식이 나타나곤 했다. 셋째 날 이후부터는 그 고통이 서서히 사라지면서 머리가 맑아지기 시작했다. 수없이 떠오르는 생각들을 글로 옮기고 과거의 나를 돌아보면서 느껴지는 부끄러움과 후회는 새로운 다짐으로 이어졌다. 공포와 걱정, 그리고 지루함은 점차 명철함과 내적 변화로 이어졌다. 몸과 마음의 상태는 내가 지금껏 느껴보지 못한 최상의 상태였다.
이렇게 일주일을 보내고 베이스캠프로 돌아온 참가자들은 서로의 경험과 각오, 새로움 다짐 등을 나누며 웃음과 울음바다를 이루며 마지막을 보내고 각자의 삶터로 돌아왔다. 주변의 모든 것이 새롭게 보였다. 지금도 그 경험을 생각하면 원천적인 힘이 솟는다. ‘비전 퀘스트’는 숲이 내게 준 인생 공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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