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 주요 부처 장관들이 국회 의원들 앞에서 사표를 흔드는 일이 잦아지고 있다. 정책 혼선 내지 실패에 대한 책임을 추궁 받을 때마다 "자리에 연연하지 않겠다"거나 "대통령께 사표를 냈다"면서 임명권자 의사와 상관 없이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다. 이를 지켜보는 더불어민주당 내부에서조차 “부처 장관으로서 무책임한 태도”, “인사권이자인 대통령의 영(令)을 훼손하는 일”이라며 반감이 커지는 분위기다.
지난 3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사퇴 번복이 대표적이다. 홍 부총리는 이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원들의 질의도 아닌데 "대주주 요건 당정 갈등에 책임을 지고 대통령에 사의를 제출했다"고 폭탄 선언을 했다. 하지만 이후 청와대는 '대통령이 반려했다'며 진화에 나섰다. 결국 4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홍 부총리는 “(대주주 기준 변경이 무산된 데) 책임 있게 반응해야 하지 않나 해서 물러나겠다고 한 것”이라며 "인사권자의 뜻에 맞춰 직무수행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사퇴 의사를 접었다.
한 배를 탄 여당에서도 이를 질책하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전날 홍 부총리의 사의표명 직후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설사 사퇴 결심을 했더라도 이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천명한 것이 책임 있는 공직자의 태도인가”라며 “대통령 참모가 아니라 정치인의 행동으로 보인다. 형식 자체도 대단히 부적절하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정책이 자신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폭탄 발언을 내 놓는 것은 공직자로서 부적합하다"며 "당정 불화를 노출할 뿐 아니라, 일을 믿고 맡긴 대통령에 누를 끼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홍 부총리의 모습을 보다못한 야당도 비판에 가세했다. 예결위 간사인 추경호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그만두는 장관을 상대로 질문할 필요가 없다”며 "정말 국회를 경시하고 무시하는 태도"라고 성토했다.
문제는 문재인 정부 장관들이 최근 국회에서 직을 내놓는 듯한 발언을 대수롭지 않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지난달 26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외교관의 잇단 성비위에 대해 “리더십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며 “대통령께서도 그렇게 평가하면 거기에 합당한 결정을 하실 것”이라고 사실상 직을 내려놓는 듯한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 주무부처인 김현미 국토부 장관 역시 지난달 2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집값 오름으로 인해 젊은 세대와 시장의 많은 분이 걱정하는 것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저는 절대 자리에 연연하거나 욕심이 있지 않다”고 스스로 거취 문제를 내걸었다.
여권에서는 "장관들이 바짝 긴장했던 정권 초기라면 가능한 모습이겠느냐"는 불만이 무성하다. 홍 부총리는 2018년 12월부터 23개월 째 부총리 직을 수행 중이고, 강경화ㆍ김현미 장관은 2017년 6월 문재인 정부 출범 부터 자리를 지킨 장수 장관이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오랜 기간 장관직을 수행하며 피로감이 쌓였을 수 있지만, '이제 할만큼 했다'며 기강이 풀린 것은 아닌지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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