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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명적 살인무기 사람의 '말'

입력
2020.11.04 16:44
수정
2020.11.04 18:21
2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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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민석
기민석목사ㆍ한국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편집자주

'호크마 샬롬'은 히브리어로 '지혜여 안녕'이란 뜻입니다. 구약의 지혜문헌으로 불리는 잠언과 전도서, 욥기를 중심으로 성경에 담긴 삶의 보편적 가르침을 쉽고 재미있게 소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남자는 시각적 동물이야.’ 남자로서 폄하당하는 것 같아 기분 나쁘긴 하지만, 슬쩍 긍정할 수밖에 없어 겸연쩍어지는 말이 아닐 수 없다. 고대 유대인의 지혜문헌 집회서에 이런 말이 있을 정도다. “예쁜 여자를 너무 바라보지 말고 남의 아내의 아름다움에 혹하지 말아라. 정욕이 불길처럼 타올라, 여자의 미모 때문에 신세를 망친 사람이 많다.”(9:8)

하지만 당당히 동물이라 인정하고 변명을 해보자. 생명에 있어서 죽음은 절대적 문제이다. 이에 대한 남자의 대처는, 육체는 소멸하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정보를 DNA에 담아 또 다른 육체에서 가상의 불멸을 하는 수밖에 없다. 튼튼한 또 다른 육체를 만들려면, 남자는 건강한 이성을 만나 성적결합을 해야만 한다. 들은 설에 의하면, 그래서 남자가 끌리는 여자는 시각적으로 그 건강함이 잘 시각화된 여성이라고 한다. 종종 퇴폐미가 취향이라고 하는 남자들도 있지만, 결혼 앞에서는 달라지기 일쑤다. 그래서 남자는 예쁜, 즉 건강함이 잘 시각화된 여자에게 끌린다. 정말일까?

남자가 그저 동물만은 아니다. 때론 정말 지고지순한 사랑만으로 우리는 결혼한다. 상대가 시한부 인생을 살아도 장애가 있어도 인간의 사랑은 동물적 본능을 이기기도 한다. 동물의 세계에서는 어림없다. 약체는 무리가 알아서 도태시켜 무리의 생존력을 강화시킨다.

그래서 고대의 고전이며 신앙적 경전인 잠언의 내용이 흥미롭다. 잠언의 많은 부분이 “아들아~”라고 시작한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3,000년 전, 아버지가 성인기에 이른 아들에게 전해 주는 삶의 지혜가 회람되다가 잠언에 담겨졌기 때문이다. 지독히 가부장적인 사회라 “딸아~”라고 부르며 성인이 되는 딸에게 직접적으로 전하는 내용은 없다. 일부 간접적인 내용은 있지만 그마저도 대게 남자들의 시각에서 적혀진 내용이다. 예를 들어, 미안하지만, 집회서는 이런 글귀도 담았다. “딸을 시집보내고 나면 큰 짐을 덜게 된다.”(7:25)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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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을 부르며 전하는 지혜의 내용은 크게 경제적인 문제와 이성의 문제를 다룬다. 3,000년 전이나 지금이나 부모의 마음은 이리도 똑같다. 특히 이성 문제에 대한 경고가 눈에 띄는데, 동물과 다름없는 성인기 초반의 남자에게 무엇을 제일 조심하라고 할까? 당연히 눈을 사로잡는 여자의 외모를 말할 것 같으나, 잠언의 조언에는 반전이 있다. “음행하는 여자의 입술에서는 꿀이 떨어지고, 그 말은 기름보다 매끄럽지만, 그것이 나중에는 쑥처럼 쓰고, 두 날을 가진 칼처럼 날카롭다.”(5:3-4). 꿀이 떨어지는 입술보다는 매끄러운 ‘말’이 등장하는 것이 흥미롭다. 여기만이 아니다. 부모의 훈계를 잘 따르면, “음행하는 여자의 호리는 말에 네가 빠지지 않게 지켜 준다”라고 말하며, 잠언은 다시 한 번 여자의 몸매가 아닌 여자의 말씨에 주의할 것을 말한다. 다시 한 번 독자들에게 미안하다. 고대의 글이라 너무 남성위주의 내용이다. 21세기, 10대의 딸에게 전하는 아빠의 조언으로 마음 푸시기 바란다. 지금 우리에겐 긴 설명 없이 한마디로 족한 명언이 있다. “남자는 다 늑대야.”

이어진 잠언에도 몇 번씩이나 강조하는 것은 또다시 말이다. “여러 가지 달콤한 말로 유혹하고 호리는 말로”로 꾀는 여자를 조심하라고 한다(7:21). 동물적 본능마저 압도할 수 있는 치명적 무기는 바로 사람의 ‘말’이라는 것이다. 듣는 이의 마음 속 순정이나 욕정을 불타오르게 하는 것은 얼굴이 아니라 말이다. 연인과 헤어지고 나면 마주칠까 주의하기 보단, 야심한 밤에 핸드폰부터 멀리해야 할 것이다.

“조용히 죽어.” 대학생들이 즐겨 사용하는 웹 커뮤니티 공간에, 위로를 받고자 글을 올린 한 학생에게 얼마 전 누가 던진 ‘말’이다. 띄어쓰기 한 칸 빼고 도합 다섯 글자, 단 두 마디로 날카롭고 서늘하게 사람의 생명줄을 베어버렸다. 다시 말하지만, 생명은 죽음 앞에 가장 큰 저항을 한다. 흔히 필사적으로 발버둥 친다고 한다. 하지만 차갑고 사악한 위 두 마디는 그 큰 저항을 스스로 꺾게 만들었다. 언제 누구에게든 쉽게 말을 던질 수 있는 DM시대에 새롭게 등장한 살인 병기는 고대의 잠언도 그 성능을 인정한 사람의 말이다.

기민석 목사ㆍ침례신학대 구약성서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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