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요구로 메웠던 것일까. 13세기 몽골 침략 당시 강화도로 수도를 옮기며 고려가 쌓았던 ‘강화중성’의 성문 흔적이 돌 담장에 의해 막힌 상태로 발견됐다.
문화재청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4일 남한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고려 시대 도성 유적 강화중성(인천 강화 남산리 일원)에서 ‘문지’(門址ㆍ문이 있던 자리)를 찾아냈다고 밝혔다.
강화중성 2차 발굴 조사는 서쪽 성벽 구간을 대상으로 지난해 1차에 이어 올해 진행됐다. 조사 결과 성문 터가 돌을 쌓은 담장으로 막혀 있었다. 연구소는 성문을 허물고 난 뒤 담을 쌓아 폐쇄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
‘고려사’ 등에 따르면 강화중성은 대(對)몽골 항쟁 시기인 1250년(고종 37년) 고려 왕실이 강화도로 들어간 뒤 만들어졌다. 둘레가 2,960칸에 17개의 크고 작은 성문이 있었다. 임시 수도 강화를 ‘⊂’ 형태로 둘러쌌는데 현재 확인된 길이는 모두 11.39㎞다. 강화중성은 강화 천도기(1232~1270년)에 축조된 성곽 중 당시 모습을 가장 온전히 간직하고 있는 유적으로 평가된다.
고려는 도성 역할을 하는 중성 외에도 내성(궁성)과 외성(섬 전체 방어)도 갖췄는데, ‘고려사’ 등 기록에 따르면 내성과 외성은 1259년 몽골이 화의 조건으로 허물라고 요구하자 없앴다. 중성에 대해서는 기록상 별다른 언급이 없지만, 중성 또한 몽골에 대한 항복의 표시로 함께 철폐됐을 공산이 크다. 이번에 발굴된 흔적은 중성 폐쇄와 관련된 유적이라는 추정이다.
성문 터는 너비 4.4m, 길이 5.3m 규모다. 성문은 긴 사각형의 기단 위에 초석을 놓고, 4개의 기둥을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성문 외곽에는 넓적하고 편평한 돌을 경사지게 깔아 보도를 만들었다. 용머리 모양 장식기와와 평기와, 장식철물, 철못 등 문과 지붕 부재로 추측되는 유물이 주변에서 다량 출토됐다.
고려의 성벽 축조 방법 파악에 필요한 단서를 찾았다는 것도 이번 조사의 성과다. 이번 조사 구역 성벽은 ‘판축토루’(版築土壘) 형태다. 성벽 윗면에는 기둥목이 세워진 지점을 따라 석렬을 1열씩 설치했다. 성벽 안쪽에는 너비 4.4m, 길이 3.5m 규모의 돌로 쌓은 시설이 있다. 성 안쪽에서 성을 오를 수 있는 등성 시설로 짐작된다.
이번 조사 결과는 이날 국립문화재연구소 유튜브 채널(https://www.youtube.com/nrichpr)을 통해서도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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