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소현의 신작 장편 '가해자들'
오래된 어느 아파트에서 살인 사건이 벌어진다. 가해자는 1112호 주민, 피해자는 위층인 1212호 주민이다. 아래 위로 나란히 붙었으니 층간 소음 문제인가 싶었는데, 문제는 1112호가 아닌 1111호에 있었다. 1111호의 윗집과 아랫집은 오랜 다툼 끝에 이사 나갔고, 옆집인 1112호는 살인 용의자가 됐고, 1111호는 정신병원에 입원했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지난해 한국일보 문학상 수상자인 정소현 작가의 신작 장편 ‘가해자들’이 다루는 이야기다. 올 초 월간 현대문학에 연재했던 걸 다듬었다. 연재 당시 제목은 보다 직접적인 ‘층간 소음 대응법’이었다.
읽어가는 내내 천장과 바닥을 쿵쿵 두드리는 소리가 귀에 맴도는 기분이 들 정도로 소설은 끔직히도 생생하다. 이 생생함은 실제 도망치듯 이사가야 했던 작가의 경험에서 나왔다. 작가는 전화 인터뷰에서 “쓰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썼다고 말했다. 끔찍한 현실을, 고스란히 기록만 해도 한 편의 호러가 완성된 것이다.
낡은 아파트는 그 자체가 울림통이다. 생후 1개월 된 갓난아기의 울음소리부터 쌍둥이들 뛰노는 소리, 샤워 물소리, 의자 끄는 소리까지, 온갖 소리를 실어 나른다. 이 소리들은 한 가정을 파탄에 이르게 하지만, 그 모든 게 오직 소리 때문만은 아니다. 가족 안에 이미 똬리 틀고 있던 불화, 깊숙한 내면에서 일렁이던 고독과 분노 같은 것들이 층간 소음이란 기폭제를 만나 폭발한다.
"층간 소음은, 식구가 많을수록 잘 안들려요. 조용한 집에 홀로 있을 때 잘 들리죠. 외롭고 고독한 사람일 수록 층간 소음에 취약한 거죠." 그래서 소설 속 가해자와 피해자는 모두 나름의 사연이 있는 여성들이다. 타인의 소리에 예민해질 수밖에 없는 존재들이다. 층간 소음은 갈등의 기폭제일 뿐이니, 가해와 피해의 범주도 뒤섞인다. 아래층이 위층 소리에 스트레스 받는다면, 위층 또한 아래층의 지속적 항의로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다. 서로가 피해자라 생각한다.
작가 또한 그런 처지다. 초등학교 2학년과 5학년,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데 코로나19 때문에 등교 하지 못한 날이 더 많았다. 꼼짝없이 집에서 아이들을 돌봐야 했던 탓에 글쓰기에만 집중할 수 있는 창작촌 입소도 포기했다. "이야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에요. 저는 아직도 층간소음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어요. 이사를 나왔는데도 가끔씩 쿵쿵 소리를 들으면 혈압이 오르고 심장이 뛰어요." 소설이야 어떻게든 결말이 나지만 소설 밖현실은 계속된다. 소설보다 현실이 더 끔찍한 호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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