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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영화는 망했다는데, 우리가 영화를 하는 이유

입력
2020.11.03 04:30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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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이제 단편소설 '0%를 향하여'

편집자주

단편소설은 한국 문학의 최전선입니다. 하지만 책으로 묶여나오기 전까지 널리 읽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한국일보는 '이 단편소설 아시나요?(이단아)' 코너를 통해 매주 한 편씩, 흥미로운 단편소설을 소개해드립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얼마 전 홍대 상상마당 시네마가 문 닫는다는 소문이 돌았다. 다양한 독립예술영화들을 뒷받침하던 데라 영화계 사람들이 들썩였다. 감독들은 공개성명서를 냈고 영화팬들은 ‘#상상마당시네마를지켜주세요’ 해시태그 운동을 전개했다. 모기업인 KT&G측이 “재정비해서 내년 재개관하겠다"고 했지만, 사실상 폐업 아니냐는 우려가 끊이지 않는다.

온라인에는 상상마당 시네마에 대한 추억담이 가득했다. “너무 설레어 상영관으로 가는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을 뛰어내려갔다”는 관객부터 “그곳에서 상영한 영화들이 쌓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감독까지. 매달 1만원 남짓 구독료만 내면 무한대로 업데이트 되는 영화를 안방에서 즐길 수 있는 시대, 독립영화관이 뭐길래 말이다.

'악스트(2020 1/2월호)'와 '소설 보다(여름 2020호)’에 실린 서이제 작가의 단편 ‘0%를 향하여’에는 바로 그런 사람들이 등장한다. 영화 일을 하다 지금은 백수인 ‘나', 노인복지센터에서 영화제작을 배우고 있는 할머니, 이만희(1913~1975) 감독 영화를 보겠다는 일념으로 충주에서 강릉까지 달려가는 고등학생 같은 이들이다.


서이제 소설가. 문학과지성사 제공

서이제 소설가. 문학과지성사 제공


“자기들끼리 찍고, 자기들끼리 보고, 자기들끼리 해먹는” 독립영화에 대해 말한다는 건 얼마간의 자부심 못지 않게 얼마간의 수치심이 뒤섞인 일이다. 술자리에서 만난 영화제작자는 “관객들 생각은 하지도 않으면서 예술 뽕에만 차 올랐다”고 하고, 영화과 입시과외를 받는 학생은 “독립영화 감독 되면 정말 저렇게 다 불행해요?”라고 묻는다. 독립영화를 찍는 우리도 마찬가지다. 백수나 다를 바 없이 사는 비슷한 처지의 친구들은 “돈도 안 되는 일 하느라 매일 바쁜 게 우리 삶”이라고 말한다.

작가는 실제 서울예대 영화과를 졸업하고 2018년 본인의 영화과 시절 이야기를 쓴 소설로 데뷔했다. '0%를 향하여' 또한 “보고 싶은 영화와 그 영화를 만들어줄 사람들을 더 열렬히 응원했어야 한다는 반성”, 그리고 “아무것도 지켜내지 못했다는 생각”에서 쓰기 시작한 소설이다. 때문에 소설은 구태여 독립영화를 만드는 이들과 그 영화를 보는 이들에 대한 기나긴 자조이자, 동시에 그런 이들에게 보내는 연대의 인사이기도 하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광화문의 독립영화관 씨네큐브에서 처음으로 영화를 보다 우는 성인 남자를 본 적이 있다. ‘인사이드 르윈’이라는, 별 가능성이 없어 보이는 어느 뮤지션에 관한 영화였다. 그다지 슬픈 영화는 아니라 생각했는데, 옆자리에 있던 한 남자가 잠시 빛이 환하게 들어찬 어느 장면에서 옷소매로 연신 눈물을 훔치고 있었다. 다른 어떤 관객에게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면서. 그 뒤 그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 건 뻔한 전개일지도 모르겠다. 극장이 아니었다면, 독립영화가 아니었다면 벌어지지 않았을 일이다. 무용한 걸 뻔히 알면서도 기어코 휩쓸리고 마는 것들이 있다. 영화가, 예술이 그렇듯. 사랑이 그렇듯. '0%'라는 존재는 늘 그렇다.

한소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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