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집 '해피랜드'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김해자 시인의 모습. 아시아 출판사 제공
기인(奇人)이다. 국문과를 나와 조립공, 미싱사, 학원 강사를 전전했다. 지금은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다. 주역과 명리학, 별자리도 공부한다. 자신은 염소자리라 겁이 많다고 한다. 작년엔 큰 수술을 했다. 약 없이는 자력으로 잠들기도 힘든 암 환자이지만 시를 쓰는 손은 멈추지 않는다. 시인 김해자의 이야기다.
2일 서울 중구의 한식당에서 김해자 시인을 만났다. 새로 출간한 시집 '해피랜드'는 그가 코로나시대와 투병 생활을 동시에 겪으며 느낀 것들에 대한 이야기다. 그는 병원에서 마스크를 쓰고 대기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면서 아픈 사람의 입장을 더욱 이해하게 됐다. 시인은 “치료를 받고 공포에 질린 상태에서, 아파도 택배 배달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나 아시아의 가난한 아이들의 문제 같은 것들을 생 체험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말했다.
투병 생활에 관한 시에서 시인은 고통스러운 치료 과정을 이겨내고자 몸부림친다. 시 ‘자기공명’에서 시인은 MRI 기계 안에 들어가 ‘톱니에 뼈가 갈리는 소리’를 듣는다. 공포 속에서 ‘자기(磁氣)’가 아닌 ‘자기(自己)’ 공명을 하며 스스로에게 ‘너는 누구니?’하고 물을 정도다. ‘귀신이 나뭇가지를 쥐어뜯는 축시’인 ‘무명’은 신음처럼 뱉어내듯 쓴 시다.
고통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신음하는 숱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확장된다. ‘둘 다 휘딱 갔다’는 빠르게 물건을 배달해야만 하는 택배 기사와 치킨 배달원의 사고에 대한 시다. 표제작 ‘해피랜드’는 쓰레기를 주워 파는 필리핀 톤도 아이들에 대한 다큐멘터리 ‘웰컴 투 해피랜드’를 보고 썼다. 시인은 아이들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그는 “이런 모습을 ‘그까짓 것’으로 치부하는 세계에 희망은 없다”고 말했다.

김해자 지음 '해피랜드'. 아시아 출판사 제공
그러나 이런 시대에도 멀어진 인간 사이를 연결하고 보듬는 건 결국 다시 인간이다. 시인이 사는 곳은 천안 광덕면 보산원리. 이름부터가 병원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시인은 이웃들과 오순도순 정겨운 일상을 보내고 있다.
수술을 마치고 돌아온 시인에게 아래층 할머니는 찰밥을 솥째로 지어 왔다. 거문도 수협의 지인이 보내주겠다던 생선 두 박스를 대구참여연대로 보냈더니, 그게 여덟 박스가 되고 김밥 싸기 운동까지 벌어졌다. 시인은 “11월 동지 전에 마늘을 심으면 그게 겨울을 나고 자라서 육쪽마늘이 된다”며 “코로나를 너무 비극으로 생각하지 말고 마늘 하나가 여섯 쪽이 되는 것처럼 채워나가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전했다.
“이 세계가 망해가는 대로 내버려두기에는 너무 아깝다.” 우리가 신인류로 거듭남으로써 이 세계에 희망이 돌아오길 바라는 시인의 전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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