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김용섭(1943~2020) 선생이 돌아가셨다. 해방 이후 사학, 아니 사학을 넘어 한국학의 전 분야를 뒷받침했다는 평을 받는, 그래서 오죽 했으면 ‘한국사의 숨은 신’이란 평가가 뒤따라 다니는 분이다. 강만길 선생의 상업연구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게 김용섭 선생의 농업연구가 꼽힌다. ‘드라마타이즈드 된 입담’이 격한 환영을 받는 ‘설민석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분이거니와, 당신 스스로 연구와 논문 쓰기 외엔 대외활동을 극히 꺼린 분이라, 대중들에겐 크게 각인되지 못한 분이기도 하다.
그래서 생각난 김에 덜 알려진 한 분 더 소개하고 싶다. 정두희(1947~2013) 선생이다. 소개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요즘 세태에 시사하는 바가 있어서다.
조선시대사라 하면 많은 이들이 떠올리는 것 중 하나가 ‘훈구와 사림의 대립’이다. 어리고 당차고 깨끗한 신진세력이, 늙고 타락한 중앙 권력층을 탄핵했다는 스토리다. 이 탄핵은 청요직이라 불리는, 대간이 주도했다.
그래서 정두희는 대간제가 자리잡아갔다는 성종 때 대간을 역임한 373명을 추적해봤다. 그랬더니 다들 중앙의 명문 거족 가문 출신이었다 한다. 사림, 즉 지방의 독립적인 중소지주 출신의 가난한 선비가 탁월한 머리와 오랜 노력으로 과거를 통해 중앙 정계에 진출해 기득권층들을 벌벌 떨게 만든 건 일종의 판타지로, 그 대간이 다름 아니라 중앙 정계 사람의 아들이더란 얘기다.
실제 다른 연구를 보면 ‘사림의 뿌리’라 불리는 김종직의 문집에서 한명회를 찬양한 글들이 후대에 대거 삭제됐다는 얘기도 나온다. 너무 과격해서 결국 죽임을 당했다는 조광조 또한 '옛 신하', 즉 훈구대신을 중용하라 앞장서서 주장했다는 부분은 잘 안 알려졌다. 아니, 김종직과 조광조는 본인들 자체가 명문 대가 출신이었다.
하지만 그런 얘긴 지워져야 한다. 아무리 땅 많고 노비 많아도 권력에 초탈한 청렴한 사림이고픈게 사람 마음이니까. 신문, 유튜브, SNS만 펼치면 내가, 그가, 우리가 대간이라는 글, 주장이 넘쳐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만 유독 그렇게 깨끗하고 청렴한 재야 지식인이 많이 태어난다기보다는, 그게 더 폼 나는 일이라 믿고픈, 재야지식인을 자임하고픈 이들이 우리 사회에 유독 더 많다고 보는 게 진실에 가까울 것이다.
대간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좋게 보는 이들은 어쨌든 한번 삐끗하면 도덕적 명분론으로 격렬하게 비판해대니 누구든 조심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덕에 조선이 오래 유지될 수 있었다고 본다. 반대로 어차피 명문대가들끼리 ‘그들만의 리그’에서 벌어지는 권력투쟁을, 그럴싸한 도덕적 대의명분으로 포장까지 해줌으로써 권력투쟁을 더 극단화시켰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급기야 조선 후기엔 소문만 돌아도 탄핵한다는 풍문탄핵(風聞彈劾), 탄핵하는 말에 대해선 근거조차 따지지 말라는 언근불문(言根不問) 같은 말들이 돌아다녔다 하니, 탄핵으로 인한 진흙탕 싸움은 예삿일이 됐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대간, 서초동이 시끄럽다. 그래서 검찰개혁이 필요하다고 하든, 그게 무슨 개혁이냐 하든, 그 또한 이젠 각자 정치적 선호와 판단의 영역이 된 듯하다. 그러니 “정치가 검찰을 덮었다”는 말만은 바로 잡자. 검찰 자체가 이미 정치다. 억울해하든, 은근히 즐기든. 헤쳐나가는 것 또한 검찰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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