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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치의 기억, 그리고 운명

입력
2020.11.01 22:00
2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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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2년 전 일이다. 무릎을 다쳐 집에서 쉬고 있었다. 집안에서 할 수 있는 소일거리로 책장을 조립하고 책을 정리하기로 했다. 시간이 걸리지만 보람찬 일이었다. 조립식 책장을 주문해서 펼쳐놓고 바닥에 주저앉아 천천히 조립하기 시작했다. 구조가 단순한 책장이었다. 망치로 못을 박아 뼈대를 만들고 뒤판을 넣어 세운 뒤 선반을 넣으면 되었다.

마지막에는 책장의 균형을 맞춰야 했다. 골판지를 적당히 접어서 바닥에 움직이지 않게 괴는 작업이었다. 나는 벽에 책장을 기대 놓은 뒤 연장을 올려놓고 불편한 무릎 때문에 주저앉아 높이를 맞추며 흔들리지 않는 지점을 찾고 있었다. 순간, 책장이 눈앞으로 기울어졌다. 몸에 책장이 쏟아질 것 같은 찰나, 두 손을 내밀어 책장을 막았다. 동시에 무엇인가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쿵 소리가 나는 곳을 보자, 맨 위 칸에 두었던 망치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섬뜩한 마음으로 바닥에 누워있는 망치를 보았다. 붉게 녹슨 망치는 커다란 못을 박기 위한 것이었다. 쇳덩이는 중심을 앞으로 모으고 최대한의 힘을 타격점에 가할 수 있게 구조적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간발의 차이로 망치의 타격점은 내 머리 대신 머리칼을 스치고 바닥에 떨어졌다. 덕분에 망치가 내 두개골을 깨고 뇌를 부수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 망치를 주워들고 마저 책장을 조립했다. 책장은 견고하게 완성되었다. 이후의 일상은 그전의 일상과 같았다.

그리고 나는 응급실에서 '어떠한 일'이 일어난 사람들을 본다. 공구가 인간에게 입히는 손상은 너무나 다양하다. 그중에는 망치 또한 있다. 못 대신 사람의 머리에 떨어져버린 망치. 그 사람들은 뇌출혈이라는 진단명으로 내 앞에 의식을 잃고 눕는다. 그들의 눈은 시간이 지나 떠지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다.

우리 머리 안에 들어 있는 것은 나 자신과도 같다. 생각과 말과 행동은 우리가 그 사람을 그 사람으로 바라보게 한다. 상처는 나아지지만 흉터를 남기고 마는 것처럼, 뇌에 생긴 상처 또한 회복되더라도 잔흔이 남는다. 팔다리의 흉터는 이전의 고통을 상기시킬 뿐이지만, 뇌에 남는 흉터는 우리를 이전과 다른 사람으로 만든다. 의식을 잃고 몸부림치는 그들을, 이전과는 다르게 되는 그들의 인생 전후를, 나는 매일 지켜본다. 그리고 평범하게 귀가한다.

나는 이전의 나와 비슷한 삶을 살아가다가, 가끔 공구함의 망치를 떠올린다. 그리고 지금의 내가 내가 아니게 되는 상상을 한다. 말하는 내용이 지금과 같지 않고, 쓰는 글도 지금과 같지 않으며, 지금과 다른 행동을 하는 나. 그날 망치가 간발의 차이로 내 머리 위에 떨어졌다면 나는 지금의 내가 아니다. 그래서 그 순간은 운명의 결정적 분기일 수 있었다. 하지만 다행히 나에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고로 나는 지금의 나처럼 말을 하고 글을 쓴다. 지금의 나로서는 너무 당연하다. 그리고 더는 그럴 수 없게 된 사람들을 나는 지켜본다.

운명의 개수는 너무 많다. 그것은 어느 순간 가지를 틀어 우리에게 거칠고 혹독한 시련을 안긴다. 그 순간부터 영영 그 사람이 아니게 되는 운명의 순간들. 그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덮친다. 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모른 채, 오늘도 망치를 집어 들어 힘차게 못을 박아 책장을 조립한다.



남궁인 응급의학과 전문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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