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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전면금지에... '옷걸이'까지 들고 거리 나선 폴란드 여성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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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전면금지에... '옷걸이'까지 들고 거리 나선 폴란드 여성들

입력
2020.10.29 1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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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재, 사실상 낙태 전면금지... 1주일째 반대시위

23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수만명의 여성 시위대가 헌법재판소의 낙태 금지법 강화에 항의하며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바르샤바=AP 연합뉴스

23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에서 수만명의 여성 시위대가 헌법재판소의 낙태 금지법 강화에 항의하며 가두행진을 벌이고 있다. 바르샤바=AP 연합뉴스

폴란드 헌법재판소가 사실상 낙태 전면금지를 결정한 뒤 여성들의 시위가 일주일 넘게 이어지면서 파업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들의 분노는 집권 보수 정치권은 물론 국교나 다름없는 가톨릭에도 가감없이 표출되고 있다. 낙태를 엄격하게 규제해온 폴란드에선 과거에도 논란이 적지 않았지만, 이번엔 사회 전체가 혼란에 빠진 형국이다.

영국 BBC방송과 미국 뉴욕타임스(NYT) 등 주요 외신들은 28일(현지시간) 바르샤바를 비롯한 폴란드 주요 도시에서 수만명의 여성들이 업무를 중단한 채 거리로 나섰다고 전했다. 이들은 '내 자궁은 당신의 놀이터가 아니다' '정부를 낙태할 수 있으면 좋겠다' 등이 적힌 손팻말을 들었고 붉은 번개 문양의 마스크를 착용했다. 일부는 은밀하게 이뤄지는 불법적인 낙태 수술을 상징하는 철제 옷걸이를 손에 쥐었다. 바르샤바에선 의회로 향하던 시위대가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다.

이번 시위는 지난 22일 기형아 낙태에 대한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촉발됐다. 헌재는 "낙태가 헌법에 보장된 생명권과 평등권을 침해한다"고 결정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그간에도 낙태가 다운증후군 같은 선천적 결함, 강간·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임산부의 생명이 위험한 경우 등으로 제한됐던 상황에서 헌재의 결정은 낙태를 전면 불법화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지난해 폴란드에서 이뤄진 낙태 수술 1,110건 중 98%는 태아가 장애를 가진 경우였다.

폴란드 여성들의 화살은 당장 집권당인 법과정의당(PiS)을 향했다. 2016년과 2018년에 '옷걸이 반란'으로 낙태 전면금지 입법이 막히자 이번엔 헌재를 동원했다고 여긴 것이다. PiS의 지원 속에 보수일변도 정책을 펴고 있는 무소속 안제이 두다 대통령을 향한 비난도 거세다. 가톨릭이 보수진영의 편에 서서 침묵함으로써 상황 악화에 일조한다고 여긴 여성 시위대는 지난 주말 몇몇 성당 안으로 진입하려 했고, 이에 따라 가톨릭 국가인 폴란드에선 사상 처음으로 미사가 중단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불똥은 의회로도 튀었다. 중도·좌파 야당은 헌재 결정을 반대하며 의회 안에 낙태 합법화를 촉구하는 현수막을 걸었다. 일부 의원들은 회의 도중 마테우시 모라비에츠키 총리에게 "낙태를 허용하라"고 고성을 지르며 항의했다. 반면 보수 성향 의원들은 시위대 마스크의 붉은 번개 문양을 나치 상징 문양에 빗대며 비난했다.

마르신 마츠작 바르샤바대 교수는 "지난 일주일간 폴란드 전역은 분노로 가득 찼다"면서 "이는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제도들이 지속적으로 침식되는 것을 지켜본 사람들의 좌절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강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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