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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1표는 효율적인가” 민주주의를 흔드는 도발적 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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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1표는 효율적인가” 민주주의를 흔드는 도발적 물음

입력
2020.10.29 15:31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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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것인가. 역사상 민주주의의 형태는 다양했지만 모두가 한표씩 행사하는 대의민주주의의의 정당성을 대체할 만한 건 아직 없는 듯 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민주주의의 축소를 얘기한다. 유권자들 모두가 국가 정책에 개입하는 게 때로는 비효율적이란 도발적 주장을 펴면서다. 인도 동부 비하르주(州)의 주의회 선거 투표가 시작된 28일 팔리간지에 마련된 한 투표소 앞에서 유권자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며 길게 줄을 서 있다. 팔리간지 AP=연합뉴스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것인가. 역사상 민주주의의 형태는 다양했지만 모두가 한표씩 행사하는 대의민주주의의의 정당성을 대체할 만한 건 아직 없는 듯 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민주주의의 축소를 얘기한다. 유권자들 모두가 국가 정책에 개입하는 게 때로는 비효율적이란 도발적 주장을 펴면서다. 인도 동부 비하르주(州)의 주의회 선거 투표가 시작된 28일 팔리간지에 마련된 한 투표소 앞에서 유권자들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하며 길게 줄을 서 있다. 팔리간지 AP=연합뉴스


전쟁이 나도 역병이 돌아도 멈추지 않는 게 있다면 바로 선거다. 대를 물려 독재자가 군림하는 나라에서조차도 선거는 일단 치러진다. 누가 뭐래도 선거는 민주주의의 꽃이며, 현대 선거의 핵심인 ‘1인 1표’ 원칙을 부정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헌데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한 신성한 믿음을 가차 없이 산산조각 내버린다. ‘1인 1표는 과연 민주주의 발전에 도움이 되는가’ 도발적 질문을 던지더니, ‘유권자의 능력은 동등하지 않으니, 모두에게 투표권을 줄 필요는 없다’는 불경한 주장까지 펼친다. 현대 민주주의 위기를 진단하는 책은 많았지만, 이런 식의 대안은 드물었다.

정치학자가 아니라 경제학자가 쓴 책이라 그럴지 모른다. 저자는 철저하게 경제학의 관점에서 민주주의의 효용성만을 따진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 나라에선 단 한번도 기근이 일어난 적이 없다”는 인도의 경제학자 아마르티아 센의 말을 전적으로 신봉한다. 다만 그가 문제 삼는 건 효과 대비 비용이다. ‘기근을 막고 학살을 막기 위해서 어느 정도의 민주주의 수준이 필요한가.’ ‘모든 국민이 100% 권리를 행사하는 민주주의가 과연 경제를 키우고 국가 이익을 높이는 데 효율적인가.’ 민주주의를 말하며 편익과 효율을 논하는 게 영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다시 한번 짚자면 이 책은 경제학자가 쓴 민주주의 비평서다.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고비용, 저효율인 건 맞다.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갈등을 조율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은 지난할 수 밖에 없다. 생산성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민주주의의 본질이다. 그러나 저자는 현재의 시스템을 민주주의의 과잉으로 진단하며, 더 높은 경제성장과 효율적인 국가 시스템을 만들기 위해서 유권자의 권한을 일부 훼손하고서라도 민주주의를 축소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 제목이기도 한 ‘10% 적은 민주주의’는 이를 뜻한다.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것인가. 역사상 민주주의의 형태는 다양했지만 모두가 한표씩 행사하는 대의민주주의의의 정당성을 대체할 만한 건 아직 없는 듯 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민주주의의 축소를 얘기한다. 유권자들 모두가 국가 정책에 개입하는 게 때로는 비효율적이란 도발적 주장을 펴면서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떤 민주주의를 만들어갈 것인가. 역사상 민주주의의 형태는 다양했지만 모두가 한표씩 행사하는 대의민주주의의의 정당성을 대체할 만한 건 아직 없는 듯 하다. 그럼에도 저자는 민주주의의 축소를 얘기한다. 유권자들 모두가 국가 정책에 개입하는 게 때로는 비효율적이란 도발적 주장을 펴면서다. 게티이미지뱅크.


어떻게 민주주의를 줄여나가나. 저자는 먼저 선출직 정치인들의 임기를 늘려 조금 덜 빈번하게 선거를 치르자고 제안한다. 선거가 반드시 유능한 정치인, 올바른 정책을 낳으리란 보장은 없다. 유권자들도 늘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한다. 하지만 정치인, 유권자만 탓할 순 없다. 선거가 너무 자주 치러지는 정치 구조부터가 문제다. 미국 상원의원들은 임기 6년 중 2년 동안 가장 열심히 일한다는 통계가 있다. 6년 내내 일하지 않는 건, 유권자들이 선거 때만 반짝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닦고 지역병원을 유치하고 선심성 정책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것도 이 즈음이다.

경제학자 관점에서 선거가 가까워지면 국가 경제도 잘 굴러가지 않는다. 무역 자유화, 노동시장 규제, 환율 정책 등 유권자가 불편해 할 민감한 사안은 건드리지 않아서다. “짧은 임기는 정치인은 물론 유권자 모두에게 근시안적 사고를 불러 일으켜 장기적으로 도움 되는 정책 추진을 방해한다.” 선거를 자주 치를수록 나라경제는 포퓰리즘으로 치우치고, 국가적 차원의 비효율은 커진다는 지적이다.

사법부와 중앙은행 등 전문가들이 더 잘 할 수 있는 영역은 유권자의 입김 밖에 두자는 주장도 편다. 두 기관이 독립적으로, 다른 말로 하면 비민주적으로 운영될수록, 금융위기 위험이 줄었고 법적 안정성은 커졌다는 근거를 대면서다. 그럼에도 가장 논쟁적인 주장은 유권자들의 능력을 동등하지 않다고 보고, 권한에 차등을 두자는 거다. 유권자의 교육수준에 따라 선거구를 조정하고, 상원에 한정해 평균 이상의 지식을 갖춘 유권자들만 투표할 수 있게 하자는 건데, 보편적 대의민주주의에 반하는 지점이다.

10% 적은 민주주의

  • 가렛 존스 지음
  • 임상훈 옮김
  • 21세기북스 발행
  • 372쪽ㆍ1만9,800원

결국 저자가 지향하는 ‘10% 적은 민주주의’는 지식인, 엘리트에 의한 정치인 ‘에피스토크라시’를 의미하는 듯 하다. 저자는 싱가포르를 모범 사례로 든다. 민주주의 수준은 10%를 뺀 것보다 더 심각하지만, 집권 세력은 중간계급을 핵심 지지층 삼아, 장기적 시야로 국가정책을 밀어붙인 덕분에 경제 성장을 일궈나갔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아무 국가나 따라 할 수 없고 해서도 안 된다. 기아와 독재 등 실질적 위험에 직면해 있고, 민주주의가 불안정한 나라는 적용 불가다. 세계적으로 부강하고, 민주주의가 탄탄한 나라들에서나 새로운 실험 가능성으로 고민해볼 일이다.

한국의 민주주의는 과잉 상태인가. 대중의 여론과 판단은 얼마나 합리적이고 상식적인가. 반대로 엘리트는 과연 유능한가. 그들에게 우리의 한 표를 믿고 맡길 만큼 신뢰가 있나. 한국 민주주의에 대입해 볼수록 답은 나오지 않고, 질문만 꼬리에 꼬리를 문다. ‘100% 완벽한 민주주의는 없다.’ 저자가 내놓은 일련의 도발적 주장들은 이를 깨닫게 하기 위한 충격요법 정도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민주주의의 정답을 찾기 위한 시행착오는 계속될 수 밖에 없으니 말이다.

강윤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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