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도박 업주가 자기 범죄 사실을 감추기 위해 명의상 대표(일명 '바지사장')에게 ‘실제 운영자’라고 허위 진술할 것을 요구한 경우, 범인도피 교사죄를 적용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진술이 사실과 다르더라도, 그 내용이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을 속이려는 정도가 아니라면 범인도피죄를 물을 수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 제3부(주심 노태악 대법관)는 범인도피 교사와 게임산업진흥법 위반 등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범인도피 교사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2014년 3월과 4월 강원 동해시에서 불법게임장을 운영하다 경찰에 적발되자, 이 게임장의 명의상 업주였던 B씨에게 "당신이 단독으로 게임장을 운영한 실제 운영자라고 경찰에 진술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B씨는 경찰에서 “게임기 딜러를 하는 후배에게 1,040만원을 주고 게임기를 구입해 불법 게임장을 운영했다”고 허위로 진술했다. 하지만 B씨는 게임장 운영에 필요한 초기 자금을 일부 투자했지만, 실제 운영에는 관여하지 않았다. 검찰은 B씨의 진술이 허위임을 파악하고 그를 범인도피 혐의로 기소하는 한편, A씨에게 게임산업진흥법 위반뿐 아니라 범인도피교사 혐의도 적용했다.
1심은 A씨의 범인도피교사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하지만 2심은 이를 뒤집었다. B씨가 단순한 ‘바지사장’이 아니라 동업자라는 이유에서다. 2심은 “A씨가 게임장 운영 수익 중 일부를 B씨에게 주기로 한 사실에 비춰, B씨는 단순히 명의만 대여한 사람으로 보기 어렵고 동업자로 볼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B씨가 자신이 실운영자라고 말한 것이 허위 진술이라고 단정하기 어렵고, 단순히 공범인 A씨의 존재에 관해 입을 닫은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참고인이 수사기관에서 범인에 관해 알고 있는 사실을 말하지 않거나, 허위로 진술하더라도 그것이 적극적으로 수사기관을 기만해 착오에 빠지게 해 범인의 신병 확보를 곤란하게 할 정도가 아니었다면, 범인도피죄로 처벌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대법원도 원심 판단이 옳다고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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