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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보필 했던 ‘이(李)의 남자' 현명관이 본 이건희 회장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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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보필 했던 ‘이(李)의 남자' 현명관이 본 이건희 회장은?

입력
2020.10.29 04:30
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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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운구차량이 28일 오전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빠져 나오고 있다. 뉴시스

25일 별세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운구차량이 28일 오전 경기 화성시 삼성전자 화성사업장을 빠져 나오고 있다. 뉴시스


“회장님, 다시 일어나셔서 제2의 ‘신경영’ 선언을 하세요. 그래야 삼성이 재도약을 하고, 한국 경제도 또 한번 발전할 수 있습니다.”

아직도 믿기지 않는 듯 했다. '주군'을 떠나 보내야만 하는 아쉬움과 안타까운 심정으로 읽혔다. '마지막으로 남기고 싶은 한 마디가 있다면'으로 부탁한 질문에 돌아온 팔순 노인의 울먹인 목소리는 그랬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경기 수원시 장안구 이목동 선영에 안장돼 영면에 들어간 28일 '이(李)의 남자'로 알려진 현명관(79) 전 삼성물산 회장과의 전화 인터뷰는 이렇게 시작됐다.

이 회장은 1987년 취임 이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2014년까지 27년 동안 7명의 비서실장이 그를 보좌했다. 현 전 회장도 그 중 한 명이다. 그는 삼성을 초일류 기업으로 바꾸기 위해 가장 급변했던 시기인 ‘신경영’의 초창기 3년간(1993년 11월~1996년 12월) 이 회장 곁을 지켰다.

현 전 회장이 전한 이 회장의 일화와 에피소드에선 ‘재계 거목’의 묵직한 경영철학이 그대로 묻어났다. 현 전 회장은 무엇보다 "이 회장의 말 한마디, 한 마디에는 앞을 내다보는 능력이 담겨 있었다"고 추억했다.

한국마사회 회장 당시의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한국마사회 회장 당시의 현명관 전 삼성물산 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현 전 회장은 먼저 이 회장에 대해 '인재 제일 주의'를 떠올렸다. "우수 인재를 뽑아 오는 것을 경영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어요. 반대로 인재를 빼앗긴 경영진에는 어느 때 보다 심한 호통과 질타가 뒤따랐습니다. 특급조리사를 포함한 20여명의 직원들이 당시 막 문을 열었던 남산 힐튼호텔로 옮겨갔거든요." 현 전 회장은 자신이 호텔신라 대표 시절인 1989년 이 회장에게 불려가 받았던 호된 질책의 순간을 이렇게 전했다.

‘편견 없는 인사’ 역시 이 회장의 빼놓을 수 없는 장점이라고 했다. "저도 편견 없는 인사의 수혜자였습니다. 삼성 공채도 아닌 관료(감사원) 출신으로 호텔신라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제가 삼성그룹의 '2인자'인 비서실장이 될 것이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그도 그럴 것이 현 전 회장은 당시 이 회장의 큰 누나인 '이인희의 사람'으로 분류됐다. 하지만 이 회장은 2년여 동안 눈 여겨 봤던 현 전 회장을 과감하게 발탁했다. ‘신경영’ 선언과 함게 과거와의 단절을 원했던 이 회장이 사내 인맥도 없었던 현 전 회장을 기용했다.

이 회장만의 독특한 현장경영도 소개했다. ‘위기’와 ‘변화’를 줄곧 강조해온 이 회장은 1993년 삼성 주요 사장단을 미국 로스앤젤레스(LA)로 소집했다. "영문도 모른 채 미국까지 날아온 경영진에게 이 회장은 '백화점과 가전제품 매장을 돌며 쇼핑을 하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삼성 가전 제품이 ‘싸구려 제품’처럼 매장 뒤편으로 밀려나 있는 반면 일본의 소니 제품은 고객들이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 놓여 있는 것을 보고 느낀 이 회장의 참담함을 사장단도 경험해 보라는 뜻이라고 했다. "국내 최고라는 자만심에 차 있는 사장단에게 우리 제품이 세계 시장에서는 3류라는 것을 직접 깨우쳐주기 위해 미국까지 불렀던 겁니다." 현 전 회장은 당황했던 27년전 상황을 또렷하게 떠올렸다.

2004년 10월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전경련 회장단, 고문, 원로자문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장단회의 및 만찬간친회를 개최했다. 앞줄 왼쪽부터 네번째가 이건희 삼성 회장이고, 뒷 줄 맨 왼쪽 현명관 당시 전경련 상근부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2004년 10월 서울 한남동 승지원에서 전경련 회장단, 고문, 원로자문단 등이 참석한 가운데 회장단회의 및 만찬간친회를 개최했다. 앞줄 왼쪽부터 네번째가 이건희 삼성 회장이고, 뒷 줄 맨 왼쪽 현명관 당시 전경련 상근부회장. 한국일보 자료사진

현 전 회장은 이 회장 사후 그려질 삼성그룹의 미래 모습도 내비쳤다. "이 회장이 1류 글로벌 기업의 틀을 만들어 놓았고, 이 부회장이 사실상 회장직을 수행한 지도 오래 됐기 때문에 큰 변화는 없을 겁니다" 이 부회장을 중심으로 한 삼성그룹의 경영권은 이미 단단하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다만 ‘이재용 시대’를 맞이한 삼성의 먹거리가 뚜렷하게 보이지 않은 점은 보강해야 될 부분이라고 지적했다. 현재 삼성의 주력 제품들은 모두 ‘이건희 시대’ 제품들이라는 게 현 전 회장의 생각이다. 세계 일류 제품이 되려면 10년 넘는 시간 동안 투자와 실패를 반복해 가면서 제품을 다듬어 가야하는데 그럴 수 있는 후보 제품들이 눈의 띄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삼성과 우리나라 경제의 앞날에 대해선 긍정적인 전망도 남겼다. “앞으로 이건희 같은 선견지명과 결단력을 가진 사람이 한둘은 더 나와야 삼성과 한국 경제가 또 한번 도약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꼭 그렇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인터뷰 끝머리에 전한 그의 메시지에선 강한 기대감이 묻어났다.

김기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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