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첫 한국인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탄생을 향한 '마지막 한 걸음'이 쉽지 않다. 최대 승부처로 여겨졌던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이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과 함께 결선에 오른 응고지 오콘조 이웰라 후보를 지지하기로 합의하면서다. 선거 판세가 크게 불리해졌지만 회원국 간 합의(컨센서스)를 거쳐야하는 선거 특징 상 마지막 가능성은 남아 있다는 게 외교 당국 내 분위기다.
AFP 통신은 26일 EU가 회원국 의견 수렴을 마쳤으며 이날 공개적으로 나이지리아의 오콘조 이웰라 후보에 대한 지지를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27일(현지시간) 마무리되는 사무총장 선호도 조사를 코앞에 두고 EU 27개국 전원이 나이지리아로 넘어갔다면 유 본부장으로선 낭패가 아닐 수 없다.
유럽과 아프리카 간 높은 연대감을 고려하면 오콘조 이웰라 후보에 대한 EU의 몰표는 어느 정도 예상됐던 바다. 단 EU에서 몇 표라도 가져올 경우 유 본부장의 입지가 크게 올라갈 것이란 게 정부 판단이었다. 외교 당국은 중동과 아세안, 남미 지역의 지지세를 바탕으로 유 본부장이 전체 164개 회원국 중에서 약 70표를 확보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박빙의 승부를 펼치는 만큼 유럽의 몇 국가라도 유 후보를 지지하면 열세를 만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전화 외교가 최근 유럽 국가 정상·외교장관에게 집중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EU 회원국 모두 이웰라 후보를 지지하면 단순 표계산에서 판세를 뒤집기는 상당히 어렵게 되는 것이다.
'유럽 표 빼오기 전략'은 실패했지만 아직 낙담하긴 이르다는 게 정부 당국자들의 설명이다. 득표 수에서 다소 밀리더라도 회원국 합의 과정에서 다양한 변수가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WTO는 선호도 조사 뒤 득표가 적은 후보에게 사퇴를 권고한다. 다만 박빙인 경우 WTO의 사퇴 권고의 명분 역시 약할 수 밖에 없다. 정부 당국자는 "큰 득표 차로 진다면 후보직 사퇴 권고를 거부하기 어렵겠지만 근소한 차이라면 얼마든지 사퇴를 거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오콘조 이웰라 후보에 대한 비토(거부권)를 행사하는 주요국이 있다면 WTO로서도 이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유 본부장을 지지하는 미국의 지지 강도가 변수가 될 수 있다.
앞서 데이비드 워커 WTO 일반이사회 의장은 다음달 7일까지 선출 과정을 마치겠다는 의사를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3일 치러지는 미 대선 결과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다자무역을 중시하는 조 바이든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 WTO가 미국의 입장을 고려할 수 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이재웅 외교부 부대변인은 "아직까지 최종 결정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전 정부 차원에서 노력 중에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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