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통계의 홍수 속에 산다. “3분기 경제성장률 전기대비 1.9%”(27일 한국은행), “지난해 독감백신 접종 후 7일 이내 사망한 고령자 1,500명”(24일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서울 아파트 평균 매매가격 10억312만원”(9월28일 KB부동산 리브온).
통계를 근거로 시비를 따진다. “소비와 내수가 살아나고 있다”(19일 문재인 대통령) “사상 최악의 고용참사, 양극화, 부채에 시달리고 있다”(19일 유승민 전 미래통합당 의원) “부동산 매매 시장은 굉장히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다”(22일 홍남기 경제부총리).
입맛대로 통계를 고르는 것까지 막을 수는 없다. 견강부회식 주장은 상식에 밀려 조용히 묻히면 된다.
우려되는 건, 국가 정책을 좌우하는 주요 통계의 진위까지 의심받는 현상이다. 통계청의 소득분배 통계는 이 정부 내내 논란이다. 지난 14일 국정감사장에서 전ㆍ현직 통계청장이 맞섰다.
전직인 유경준 국민의힘 의원은 “통계청이 가계동향조사 표본에서 저소득층 비율을 줄여 소득격차가 (실제보다) 축소됐다” “연간 소득자료를 일부러 만들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강신욱 통계청장은 “통계청이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숫자를 발표한다는 지적에 전혀 공감할 수 없고 사실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비전문가가 판단하기 어렵지만, 둘 다 맞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지난 7월 “(현 정부 들어) 서울 아파트값이 14% 올랐다”고 한국감정원 통계를 인용하면서 논란을 키웠다. KB부동산 통계 등을 기초로 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의 분석은 52% 상승이다. 심지어 감정원이 공표하는 통계 가운데는 45.5%(실거래가격지수), 39.1%(실거래 평균가격), 38.7%(실거래 중위가격) 상승도 있어 ‘취사선택’ 의혹까지 샀다.
국토부는 이에 대해 “장관에게는 14%(매매가격지수)만 보고했다. 매매가격지수에 실거래가격도 반영돼 있다”고 해명했다. ‘다 감안해서 하는 일’이라는 취지지만, 어쨌든 국민 다수는 정부의 집값 인식을 잘 납득하지 못한다.
영원불변의 통계는 없다. 어떤 현상을 무슨 기준으로 보느냐로 통계는 달라진다. 같은 통계도 시간이 지나면 측정법을 바꿔야 할 때가 있다.
다만 통계 산출과 변화에는 합당한 설명과 논리가 따라야 한다. 의심이 반복되는 건, 그게 부족해서다. 통계에 변화를 줬다면, 왜 그랬는지 수요자도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과거 기준으로 지금은 어느 수준인지도 한동안은 함께 제시하는 게 맞다. 돈 많이 드는 불편한 작업이라도 중요하다. 대중의 신뢰를 유지하는 게 통계에는 생명이다.
석연찮은 이유로 통계 생산에 변화를 주는 행위도 삼가야 한다. 이는 관이나 민이나 마찬가지다. 최근 KB부동산이 17년간 발표해 온 주간 매매ㆍ전세 거래지수를 갑자기 중단했다가 되살린 건 통계 기관의 신뢰까지 의심케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마침 부동산 통계 보완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은 26일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실거래 현황이 정확하게 반영되도록 부동산 공공통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국회 등의) 지적이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개선일지, 개악일지는 지켜보면 알 것이다. 의심 받는 순간, 통계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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