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지역 학교 선후배 그룹 범죄 잇따라
"10대 합법운전 방안 검토해야" 목소리도
‘일진(학교폭력 가해자)’그룹이 또래 10대를 이른바 ‘렌터카 마네킹’으로 이용해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는 악성범죄가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마네킹’이란 렌터카 사고를 통해 보험사로부터 합의금을 받아낼 때 범행에 쓰인 차량 안에서 가만히 앉아있는 사람을 뜻한다.
지난 3월 13일 오후 8시20분쯤 서울 광진구 자양동 신자초등학교 사거리에서 K5 렌터카에 탑승한 운전자 A(21)씨가 10대를 포함한 동승자 3명과 배회하다가 좌회전 차선에서 진로를 바꾸며 직진하던 티볼리 차량의 오른쪽 뒤편을 고의로 들이받았다. A씨는 이후 실제 차량에 탑승하지 않은 지역ㆍ학교 선후배들의 인적사항을 알아뒀다가 보험사에 허위로 제출했다. 서울 강남의 한방병원에 입원한 이들은 1인당 100만원씩 총 400만원의 합의금을 지급받아 편취했다.
서울경찰청 교통범죄수사팀은 A씨 등 주범 6명이 호남지역 고교 후배들을 ‘마네킹’으로 동원해 지방에서 범죄를 벌이다 서울로 원정까지 온 사실을 밝혀내고 범행에 연루된 50여명을 검거했다. 이들이 지난해 8월부터 올해 4월까지 저지른 '마네킹' 범죄는 50건이 넘고, 벌어들인 돈도 2억여 원에 이른다. 경찰 관계자는 “지방에서 계속 범죄를 저지르면 보험사 직원들에게 얼굴이 알려질 수밖에 없다. 지방보다 서울에서 사고 합의금이 높다는 점도 원정 범죄를 저지른 이유"라고 설명했다.
문제는 '마네킹' 범죄가 최근 특정지역 학교 선후배 그룹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점이다. 손해보험업계에 따르면 10대들이 휴대폰 유심(USIM)칩을 성인 것으로 바꿔 끼운 뒤 온라인으로 공유차를 빌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렌터카업체가 돈벌이를 위해 미성년자의 주민번호를 성인 것으로 허위 기재하고 차량을 빌려주는 일도 있다. 게다가 일부 한방병원이 이들의 ‘꾀병’ 입원과 처방을 돕고 있어 '마네킹 범죄'의 근절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10대 '마네킹' 범죄를 줄이려면 렌터카업체와 공유차업계의 관리감독을 강화하고, 보험사기 집단을 일벌백계 하는 게 최우선 대책으로 꼽힌다. 하지만 대중교통 서비스가 부족해 청소년들이 통학에 어려움을 겪는 지역의 경우 10대가 합법적으로 운전할 수 있도록 해서 '풍선효과'를 방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용훈 교통문화운동본부 대표는 “일부 10대 청소년들이 모터사이클을 타다가 싫증나거나 위험하면 자동차에 손을 대고, 범죄에까지 가담하는 경우가 있다”며 “자율주행차 확산 등 기술발전으로 누구나 손쉽게 운전하는 시대가 도래한 만큼 합리적 대안을 검토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박경철 경기연구원 연구위원이 2018년 펴낸 ‘운전면허 취득 연령 개편 방안’에 따르면 미국 캘리포니아 주에서는 16세 이상이면 ‘미성년자 제한 운전면허증(Provisional Driver Licence)’을 발급받아 운전할 수 있다. 초기 1년 동안은 오후 11시~오전 5시에는 운전할 수 없도록 하며, 18세가 되면 정식 운전면허증으로 바꿔준다. 우리나라의 경우 운전면허 취득 최소 연령은 대형차량은 19세, 중소형차량은 18세이다. 보고서는 운전면허 취득 후 1년 미만 운전자보다 오히려 3~4년이 경과한 사람들의 사고발생이 더 많다고 지적했다.
박 위원은 보고서에서 "운전면허 취득 최소연령이 완화되면 청소년들이 지금보다 자유로운 이동권을 선택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안전교육을 철저히 하면 통학 뿐만 아니라 아르바이트나 구직활동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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