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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전설’의 아름다운 퇴장

입력
2020.10.27 18:00
수정
2020.10.28 07:07
26면
0 0

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전북 현대는 26일 "23년간 프로축구 선수로서의 활약을 마치고 제2의 인생을 선언한 이동국이 올 시즌 K리그 최종전이 열리는 11월 1일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고 알렸다. 사진은 이동국이 등번호 20번이 적힌 유니폰을 벗어 관중에게 보여주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전북 현대는 26일 "23년간 프로축구 선수로서의 활약을 마치고 제2의 인생을 선언한 이동국이 올 시즌 K리그 최종전이 열리는 11월 1일 선수로서 마지막 경기를 치른다"고 알렸다. 사진은 이동국이 등번호 20번이 적힌 유니폰을 벗어 관중에게 보여주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조별리그 2차전. 역대 최연소(19세) 국가대표였던 이동국은 후반 32분 네덜란드에 0대 3으로 뒤지던 상황에서 교체 투입됐다. 경기 막판 그가 날린 강력한 중거리 슛은 골문을 가르진 못했지만 국민의 마음을 후련하게 해줬다. 결국 0대 5로 대패했지만 단 한 번의 슈팅에서 많은 이들은 희망을 보았다. 그 결과 침체됐던 K리그에선 오랜만에 붐이 일어났다.

□23년의 프로 생활 중 역대 최다골인 228골을 기록한 스트라이커에게도 월드컵은 소회와 미련이 가득한 무대다.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때 신성처럼 떠올랐지만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은 되지 못했다. 거스 히딩크 감독의 부름을 받지 못한 것이다. “나 없는 월드컵은 다 소용이 없다”며 좌절하고 방황했던 시기였다. 이후 2006년 독일 월드컵 때도 무릎 부상으로 대표팀 진출이 무산됐고,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때는 출전은 했으나 기대만큼 활약하지 못했다.

□이동국은 월드컵에서 성과를 내지 못했지만 그 이상을 해낸 선수다. 2009년 전북 현대에 입단한 뒤 제2의 전성기를 시작한 그는 전북에서 7번이나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최근 네 시즌 동안은 K리그 최고령 선수로서 활약했다. 불혹을 넘긴 나이(41)에 현역으로 뛰는 건 매우 드문 일이다. 그러면서도 집에서는 다섯 자녀의 육아에 최선을 다하는 일명 ‘대박이’ 아빠로 불렸다. 지독한 자기 관리 없이는 가능하지 않은 일들이다.

□내달 1일 은퇴 경기를 갖는 이동국이 은퇴 심경을 전한 글에서 프로에 데뷔한 1998년은 대한민국이 IMF로 고통받던 시기고 은퇴를 선언한 2020년은 코로나19 사태라는 안타까운 시국을 맞은 해라고 적었다. 두 해에 의미를 부여한 건 고통의 터널을 지나는 많은 이들에게 축구가 희망과 용기가 되어주길 바라는 마음일 터다. 다행히 ‘맨발 투혼’ 샷 박세리와 메이저리거 박찬호가 IMF 극복의 상징이 됐듯, 큰 부상과 부진을 이겨내고 다시 정상에 올라선 이동국의 축구 인생도 또 하나의 위기 극복 스토리가 되어 가는 중이다. 최선을 다한 ‘라이언 킹’의 퇴장에 박수를 보낸다.

김영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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