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새들이 벽에 부딪혀 죽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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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새들이 벽에 부딪혀 죽어갑니다

입력
2020.10.27 15:00
수정
2020.10.27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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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준
김영준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

한 방음벽에서 발견된 수많은 충돌 흔적. 새가 투명창을 보지 못한 이유다. 김영준 실장 제공


몇 번을 망설였습니다. 2년에 걸쳐 벌써 세 번째 같은 주제를 다루는 것은 어찌 보면 무책임한 것일 수도 있지요. 그럼에도, 이 글을 써야겠단 생각의 이유는 최근 방문한 방음벽 때문입니다. 2년간 27번을 살핀 23번 국도의 2.7㎞ 방음벽에서 그동안 900마리가 넘는 사체와 흔적을 찾았습니다. 너구리와 고양이, 까치가 물고가고 남은 사체들, 비에 쓸려가고, 방음벽 너머에 떨어진 새들은 조사조차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덧붙여 생각해보자면 1년간 적어도 1,000마리는 죽었을, 잔인한 방음벽을 찾으며 놀랍니다. 또다시 수없이 많은 충돌의 흔적이 여기저기 단단한 투명창에 짓이겨져 있었기 때문이죠. 이날 120마리의 기록 중 84개는 충돌흔적. 눈여겨보지 않으면 누구라도 지나칠 킬링필드가 눈앞에 펼쳐져 있었습니다.

유리는 근본적으로 보이지 않게끔 진화를 거듭해 왔습니다. 사람도 무심결에 부딪히는 마당에, 새들이라고 뾰쪽한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새들은 사람과 달리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야 하기에 그 충돌에너지를 온몸으로 모두 안아야 하죠. 인간 거주지가 발달하고 도로건설은 필연이겠지요. 여기서 나타나는 소음 문제 해결을 위한 방음벽은 필수적이며 주변 거주민의 조망권도 중요하기에 투명방음벽이 설치됩니다. 공중을 가로막아야 하는 숙명을 지닌 방음벽은 그래서 새들에게 치명적입니다. 비단 제가 방문한 방음벽에서만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은 아니겠지요. 우리나라에서 연간 800만마리의 새가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에 어떤 이들은 가슴 아파하고, 누구는 부정하기도 합니다. 일상적 상상을 뛰어넘는 수가 조용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없어지기 때문이죠.


방음벽에서의 저감효과. 동일 지역의 방음벽에서 일부만 저감조치를 하였다. 저감조치 이전(노란색)와 이후 발견사례(붉은색). 미시공지역에서는 지속적으로 새들이 죽는 게 확인된다.


북미에서만 50년간 30%에 달하는 번식조류가 사라졌고,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원인은 서식지 파괴입니다. 들고양이 문제와 더불어 투명창 충돌이 그 뒤를 잇습니다. 충돌로 미국에서만 연간 5억마리가 넘게 죽는답니다. 너무나 많은 새가 ‘투명창’이라는, 역사적으로 접해보지 못한 천적을 만나 생태계 균형은 근본부터 무너지고 있습니다.

해결방법이야 많습니다. 새로운 투명 방음벽에는 효과검증을 받은 문양을 넣어 생산하면 되고, 기존 방음벽에는 내구성과 저감 효과가 뛰어난 필름이나 스티커를 부착하면 됩니다. 약간의 사회 비용이면 새를 죽이지 않아도 됩니다. 방음벽보다 30배나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건축물도 공공건축물 우선조치나 전원주택 혹은 펜션 같은 고위험 사유건물에 대한 보조금 등을 지원하여 참여할 수 있는 방안을 열어줘야 합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법률적 근거마련이 절실합니다. 이미 미국 미네소타주나 뉴욕시 등에서는 공공건축물에 대한 의무규정으로 반영을 한 바 있지요. 우리나라도 일부 시의회에서는 조례를 검토하고 있지만 상위법 마련이 안 되었기에 답보 상태입니다. 토마토 같이 물컹거렸다면 온 유리창은 핏자국으로 얼룩졌을 테고, 돌멩이 같이 단단했더라면 유리창이 깨져 더 빨리 다른 대안을 모색했을 테지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새들이 지금도 속절없이 죽어만 가는 현실을 더 이상 묵과해서는 안 될 일입니다.


새들이 투명방음벽에 충돌하며 남긴 흔적. 이 마저도 모든 조류가 이 흔적을 남기는 것은 아니다. 김영준 실장 제공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관리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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