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표 예정일에 12월 10일로 45일 연기
조사 난항·단순 순연·미 대선 고려 등 해석 다양
'합의 골든타임' 확보 시각 대두?
"양사 합의 불발되면 전기차 시장 전체에 타격"
배터리 및 전기차 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 간의 영업비밀 침해 소송에 대해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재차 최종 판결을 연기했다. 업계는 ITC의 연기 결정 배경에 대해 다양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소송이 장기화할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기 때문에 오히려 최종 판결 전 합의를 할 수 있는 '골든타임'이 다시 한번 찾아왔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배터리 영업비밀 침해 소송 최종 판결이 예정돼 있던 26일(현지시간) ITC는 12월 10일로 판결을 다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당초 이달 5일이었던 최종 판결 기일을 지난달 25일 3주 연기한 데 이어, 이번에 또 다시 45일을 미룬 것이다. ITC는 지난 연기 때와 마찬가지로 최종 판결을 미룬 배경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
업계에서는 ITC가 최종 판결을 자꾸 미루는 이유에 대해 크게 3가지로 분석한다. 먼저 SK이노베이션의 영업비밀 침해 여부를 판단하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해석이다. 이게 맞다면 SK이노베이션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SK이노베이션은 이날 ITC의 최종 판결 연기에 대해 "위원회가 본 사건의 쟁점을 심도 있게 살펴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고 언급했다. SK이노베이션 측은 지난 4월 ITC가 예비 판결 이후 재검토 결정을 내린 것도 구체적으로 어떤 영업비밀을 침해했고, 이로 인해 얼마나 부당이득을 챙겼는지 특정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두 번째는 ITC의 업무가 과다한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조사가 원활히 이뤄지지 않아 단순히 순연됐다는 분석이다. 이는 LG화학에 유리하다. 실제 인공관절 고정용 시멘트에 대해 독일 기업 헤라우스메디칼이 글로벌 기업 짐머바이오메트를 상대로 제기한 영업비밀 침해 소송도 최종 판결일이 9월 10일에서 10월 13일, 다시 10월 29일로 연기된 바 있다. 업계에 따르면 올해 3월 이후 현재까지 ITC가 직접 최종 판결 시점을 연장한 소송이 총 14건이며, 이 중 2번 이상 연장한 것이 8건이다. 3번 이상 연장한 소송도 4건에 이른다. 연장 이력이 있는 14건의 소송 중 9건은 최종 판결이 내려졌다.
마지막으로 ITC가 미국 대선 등 정치적 변수를 고려해 최종 판결 시점을 늦췄다는 분석도 나온다. 11월 3일에 치러지는 대선 이후 최종 판결이 나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거부권의 정치적 활용도가 낮아진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 13일 "SK와 LG 간 싸움은 대선 중 조지아주에서 승리해야 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와일드 카드가 될 수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ITC의 수입금지 조치 결정에 거부권을 행사함으로써 SK이노베이션이 공장을 짓고 있는 조지아주의 표심에 얻을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번 ITC의 연기 결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은 와일드 카드를 잃은 셈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임기가 내년 1월 19일까지인 점을 감안하면 12월 10일 ITC가 최종 판결을 내릴 경우 60일 이내에 행사할 수 있는 거부권은 트럼프 대통령, 혹은 차기 대통령 모두 쓸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물론 공화당과 민주당 양쪽에게 일자리는 뜨거운 이슈라는 점에서 어느 쪽이 승리해도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가능성이 남아 있긴 하지만, SK이노베이션 입장에선 다소 아쉬운 부분이다.
한편 이유를 떠나서 ITC의 최종 판결 연기를 계기로 양사가 합의에 이를 수 있는 골든타임이 찾아왔다는 시각이 대두되고 있다. 양사 역시 이날 발표한 입장에서 합의에 무게를 뒀다. LG화학은 "경쟁사가 진정성을 가지고 소송 문제 해결에 나선다면 대화의 문은 열려 있다는 것이 일관된 원칙"이라고 재차 상기했고, SK이노베이션 역시 "소송의 장기화에 따른 불확실성을 없앨 수 있도록 양사가 현명하게 판단해 조속히 분쟁을 종료하고 사업 본연에 매진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SK이노베이션에서 배터리를 공급받기로 한 글로벌 완성차 업체들은 물론 양극재 ·음극재·분리막 등 배터리 소재를 납품하는 회사들을 포함해 수많은 이해관계자들이 이번 소송 결과에 따라 사업에 막대한 차질을 빚을 수 있어 최대한 빨리 불확실성을 해소해 달라는 여론이 비등하다"며 "LG화학 역시 99% 이상 승리를 장담하던 소송이 길어지면서 배터리 부문 분사에 따른 개인 투자자 반발, LG화학 배터리가 사용된 전기차 화재 사건 등과 함께 부담이 커질 수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양사가 조기에 합의에 도달하지 못할 경우 양사는 물론 전기차 시장 전체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적지 않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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