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26일 끝났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국정감사 기간 정부부처와 공공기관은 그야말로 노심초사다. 세종시와 서울을 오가는 ‘길과장, 길국장’들은 국회 복도에서 비상대기를 한다. 여름부터 쏟아지는 국회의원들의 자료 요청으로 많은 공무원들과 공공기관 직원들은 몇 달째 야근이다. 국회의원과 의원실 보좌관들의 수고야 말할 것도 없다. 창과 방패로 서로 겨누던 모두가 오늘에서야 비로소 한숨 돌리고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들의 임기가 시작되는 첫해 국정감사는 더욱 불꽃 튀는 정책 경쟁이 벌어진다. 두각을 나타내기 위해 국회의원들이 앞다투어 이슈를 선점하고자 애쓰고, 국민의 이목을 끌어보려는 약간의 쇼맨십도 더해진다. 덕분에 국민의 눈과 귀는, 좋게 말하면 호강하고 나쁘게 말하면 편할 날이 없다. 매년 한 차례씩 이렇게 푸닥거리를 하고 나면 왜 국감을 해야 하는가? 국감 무용론이 슬며시 고개를 들기도 한다. 국정감사를 이용해 정쟁을 일삼는 국회의원들을 보면 국감이 차라리 없어지면 어떨까 생각해 보기도 한다.
그러나 현대 민주주의 위기 속에서 그 힘이 계속 커지고 있는 비선출직 전문 관료에 대한 민주적 통제는 입법부인 국회가 가장 효과적이다. 그런 점에서 며칠 전 1인 정당 시대전환의 초선 조정훈 의원이 국정감사장에서 한 의사진행 발언을 곱씹어 본다. “저는 국회의원이 입법노동자이고 국민의 대리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는 삼권분립의 대통령제입니다. 의원내각제가 아닙니다. 집권 여당의 의원들이 행정부를 방어하고 싶겠지만 행정부는 국회에 의해 견제되지 않으면 아무도 견제할 수 없습니다. 국회의원들이 행정부를 따끔하게 질의하는데 여야가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국감장에서 거대 여당의 행정부 옹호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짐작하게 하는 말이다.
장기적으로는 상시 국회를 통해 국회의원들이 1년 내내 일하도록 해야 한다. 군부 독재시절 150일 정기국회로 제한하다가 민주화 이후 2000년 짝수달 임시국회가 생겼다. 그로부터 20년이 지났으니 이제 임시국회가 아니라 상시 국회를 제도화할 만하다. 지금처럼 1년에 한 번 국정감사가 열리니 국감스타가 되고자 하는 의원들의 자극적인 행동들이 난무하는 것이다.
영국 유학 시절 매주 수요일 열리는 ‘총리에 대한 질의(Prime Minister’s Question)’ 중계를 보곤 했다. 주요 부처 장관들이 배석하고 야당에서는 그림자 내각(야당 의원들로 정부 내각에 대칭되게 만든 조직)도 참여하여 창과 방패를 번갈아가며 토론으로 정면승부를 벌인다. 총리와 장관이 매주 수요일 국회의원과 국정을 토론하기 위해서는 정책 이슈에 대해 늘 학습하고 준비해야 한다. 미리 확보한 국회의원들의 질문지나 예상 답변으로 대응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국회의원들 역시 질문 기회를 잡기 위해서는 아침부터 줄을 서서 추첨하고, 보충 질의라도 하려면 의장과 눈을 맞춰야 하니 부지런히 손을 든다. 지정석이 없어서 아침 일찍 회의장에 자리를 맡지 않으면 서 있거나 회의장 밖에서 들을 수밖에 없다. 그야말로 치열한 정책 경쟁, 정치 경쟁의 장이다. 그런 국회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공상일까? 국민의 대리인이자 입법노동자가 오직 실력으로 행정관료를 견제할 때 행정부의 변화와 민주주의 완성이 동시에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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