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회장 별세로 4대 그룹 총수 모두 40~50대?
실리와 합리성, 소통 강조... 그룹 간 협력도 적극적
투명성 강화, 경영 능력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과제
지난 5월, 충남 천안의 삼성SDI 사업장에서 이뤄진 정의선(50)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이재용(52) 삼성전자 부회장의 만남은 '깜짝 회동'에 가까웠다. 재계 1,2위로 팽팽한 긴장 관계를 유지해 온 양사 최고경영진의 만남은 선대 회장 때부터 극히 드문 일로 여겨졌다. 특히 두 회사의 불편한 관계는 삼성의 1995년 자동차 사업 진출이 계기가 됐다. 이후 삼성에서 자동차 사업을 포기했지만 양사의 거리두기는 계속됐다는 게 재계 안팎의 후문이다. 현대차가 전기차 배터리를 삼성 SDI를 제외한 LG화학, SK이노베이션에서만 공급받았던 것도 이런 분위기의 연장선이란 해석까지 나올 정도다. 이 가운데 연출된 이 부회장과 정 회장의 회동은 이전 세대와는 확실하게 달라진 행보란 평가를 받고 있다.
'젊은 피'로 수혈 중인 국내 재계에 새로운 리더십이 주목 받고 있다. 사실상 1·2세대 시대에 이어 3·4세대로의 교체가 가속화된 가운데 '명분'보다 '실리'를 택하는 경영 행보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 별세와 함께 국내 4대 그룹은 모두 40~50대 '3·4세 회장' 체제로 사실상 재편됐다.
4대 그룹 중 가장 먼저 총수가 된 건 최태원(60) SK 회장이다. 그는 1998년 부친 최종현 회장 타계 후 38세의 나이로 회장을 맡았다. 이어 구광모(42) LG 회장이 2018년 5월 아버지 구본무 회장이 타계한 지 한 달 뒤 회장에 취임했다. 현대차그룹도 최근 그룹 총수를 정몽구(82) 회장에서 장남인 정의선 신임 회장으로 교체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아직 '회장' 직함은 달지 않았지만 승진은 시간 문제란 전망이다. 이미 2018년 공정거래위원회는 이 부회장을 기업집단 동일인(총수)으로 지정한 바 있다.
합리성과 소통으로 무장한 3·4세 총수들은 앞선 1·2세대와는 달리 그룹 간 협력에 적극적이다. 정의선 회장과 이재용 부회장의 '깜짝 배터리 회동'이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까지 합류한 '배터리 사륜 동맹'으로 확장된 게 대표적인 사례다. 전기차와 '포스트 반도체'로 불리는 2차 전지(배터리) 시장에서 글로벌 기업들과 경쟁을 위해선 국내 그룹과의 협력은 필수란 게 젊은 총수들의 인식이다.
경영 전면에 나선 젊은 4대 그룹 총수들의 경우엔 정기적인 만남을 이어갈 정도로 개인적 친분도 두텁다. 재계 관계자는 "맏형격인 최태원 회장이 모임을 주로 주선하는 것으로 안다"고 귀띔했다.
4대 그룹 외에도 재계의 세대교체는 활발하다. 한화나 롯데그룹은 현재 2세 체제이지만 3·4세로의 변화에도 분주한 모습이다. 한화의 경우 김승연(68) 한화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37) 한화솔루션 전력부문장 부사장이 최근 사장으로 승진했다. 김 회장이 내년에 경영 일선에 복귀할 것이 유력하지만 김동관 사장의 고속 승진으로 경영 승계에 속도가 붙었다. 신동빈(65) 롯데 회장은 2세 경영인 가운데 가장 활발하게 활동 중이지만 신 회장의 아들 신유열(34)씨가 올해 일본 롯데에 입사한 것에 대해 경영 승계 수업이 본격 시작됐다는 해석이 나온다. GS그룹 역시 허창수(72) 회장 외아들인 허윤홍(41) GS건설 부사장이 사장으로 승진하며 4세 경영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 밖에 LS, 코오롱, 신세계, 현대중공업, CJ그룹도 세대교체 작업에 돌입했다는 분석이다.
물론 3·4세 총수들 앞에는 경영인으로서 확실한 성과를 증명해야 한다는 과제가 놓여 있다. 1·2세 총수들은 부패, 비자금 조성, 정경유착 등에서 자유롭지 못하지만 기업을 세계 수준으로 키워 국가 경제 성장을 책임졌다는 성과만큼은 확실히 인정받고 있다. 반면 물려받은 지분으로 지위를 차지한 3·4세는 지배구조 개편 등 투명성 강화와 신성장동력 발굴로 경영 능력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는 상황이다. 재계 관계자는 "3·4세대 경영인이 인정 받기 위해선 확실한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그렇지 않을 경우엔 오히려 각 그룹에게 더 큰 위기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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