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일-패스트(fail-fast)' 전략을 문자 그대로 번역하면 ‘빨리 실패하기’ 전략이다. 이게 웬 뚱딴지 같은 소리인가 의아할 것이다. 그러나 이 전략은 구글과 같은 성공한 IT 기업들이 추구하는 전략이다. 그들을 성공으로 이끈 전략이라니 궁금하지 않은가.
이 전략에 의하면 휘발성이 높고, 불확실하며, 복잡한 환경 속에서 기업이 생존하려면 가장 중요시해야 하는 것이 ‘속도’라고 단언한다. 완벽보다는 '굿-이너프(good-enough)', 즉 적당한 제품으로 시장을 탐색한다. 물론 이게 실패할 수 있다. 그런데 핵심은 ‘반복’에 있다. 실패하면 빨리 그 제품을 버리고 경로를 수정하여 다시 이 과정을 반복한다.
미국 대통령 선거가 일주일 남았다. 당선자가 누구든 그는 한반도 안보에 심대한 영향을 줄 대통령이 될 것이다. 이미 우리 전략가들은 당선자가 누구인지에 따른 대미 접근법을 구상하고 있을 것이다. 바이든 후보가 당선되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되는 경우에도 새로운 접근이 필요하다. 재선의 부담이 없어진 대통령의 시야는 과거와는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떤 전략으로 미국을 대해야 할까 이리저리 고민하다 페일-패스트 전략을 떠올리게 됐다.
페일-패스트란 용어가 낯설 테지만 이 전략의 핵심인 굿-이너프란 용어는 익숙할 것이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되자 우리 안보팀이 내놓은 대안이 ‘굿-이너프 딜(deal)’이었다. 좋은 제안이었지만 안타깝게도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버스가 떠난 후였기 때문이다. 속도와 타이밍의 중요성이 여기서 나온다. 하노이 회담 결렬로 미국이 북한에 준 메시지는 사실상 리비아식 일괄 비핵화만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북한이 받을 수 없는 조건이었다. 그 이후로 1년 8개월이 흘렀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고 있다.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지만 과감한 시도를 도모하는 이가 없어 보인다. 기다리는 것도 ‘전략’이라는 것인가.
지난 10일, 당 창건일 열병식에서 북한은 신형 ICBM을 선보였다. 괴이하고 도발적인 것이었지만 전반적으로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나약함으로 오해받을 수도 있을 최고 지도자의 울컥하는 모습도 그대로 보여줬다. 북한이 정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출구를 고민하고 있는 이 시점에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있다. 어떤 식으로든 리더십에 변화가 예상된다. 앞으로 몇 개월이 변곡점이 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빨리 실패하기 전략’은 귀한 교훈을 준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되든 새롭게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든 북·미 양쪽을 오가며 다양한 대안을 시험해 봐야 할 때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속도’와 ‘굿-이너프’ 정신이다.
지금 한미, 남북, 남북미 간에 복잡한 이슈가 얽혀 있다. 이것들을 잘 연계시켜 주고 받기가 가능한 대안을 만들어 보자. 그리고 이를 빠르게 시험해 보는 거다. 우리는 최선의 조건에 집착하기보다는 괜찮은 조건을 가지고 거래를 시도해야 한다. 실패하면 바로 다음 대안으로 넘어가면 된다.
지구상에서 가장 골치 아픈 지정학적 위치에 자리 잡은 우리다. 살아남으려면 속도가 중요하다. 섣불리 속도를 강조하다 큰일을 당한다고 우려할지 모른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정부 관료제는 너무 신중해서 탈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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