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업법 개정에 삼성물산→삼성전자??
공정거래법상 천문학적 추가비용 필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별세로 삼성그룹 지배구조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점쳐지고 있다. 명실공히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중심의 '뉴 삼성' 시대가 개막한 만큼, 그 동안 발목을 잡아왔던 지배구조는 어떤 형태로든 정리하고 나갈 공산이 크다. 삼성도 이 회장이 병상에 누운 2014년 이후 다양한 시나리오를 놓고 고민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10조원이 넘는 막대한 상속세도 난제이지만, 국회에 발의된 보험업법 개정안에 대한 대응책 마련은 단순히 자금 확보 이상의 훨씬 고차원적인 해법을 요구하는 상황이다.
26일 재계에 따르면 현재 삼성 지배구조의 골격은 이 부회장→삼성물산→삼성생명→삼성전자의 고리로 이뤄져 있다. 이 부회장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율이 0.7%에 불과하지만 삼성물산(17.48%)을 통해 삼성전자를 통제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여당에서 추진 중인 보험업법 개정안이 이 지배구조를 뒤흔드는 파괴력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보험업법은 보험금을 낸 고객 보호를 위해 보험사가 불안전 자산인 계열사 지분을 총자산의 3% 이상 갖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개정안의 골자는 계열사 지분 가치를 현행 취득원가에서 시장가격으로 바꾸는 데 있다.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은 8.51%(5억815만7,148주). 지금처럼 취득원가(주당 800~1,100원)를 기준으로 하면 지분 가치는 약 5,400억원으로 삼성생명 총자산(약 291조3,000억원)의 0.2% 수준에 그친다. 하지만 기준이 시가(26일 종가 6만400원)로 바뀔 경우 삼성전자 지분 가치는 30조6,926억원으로 총 자산의 10%를 초과한다. 3% 이하로 맞추려면 20조원 이상의 삼성전자 지분을 매각해야 한다.
시장에선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인수, 지배구조를 이 부회장→삼성물산→삼성전자로 단순화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삼성물산의 자금책으론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이 떠오른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지분을 삼성전자에 넘기고, 그 돈으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을 가져오는 방식이다. 삼성물산은 삼성바이오로직스의 최대주주로 44.43% 지분을 갖고 있다.
하지만 이에 따른 4조원 이상의 법인세가 걸림돌이다. 법인은 보유주식을 팔면 매각차익의 22% 수준에서 세금을 내야 한다. 실제 발생하는 차익도 없는 마당에 막대한 출혈을 부담해야 하는 셈이다.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삼성전자 지분 취득원가를 감안하면 세금만 주당 약 1만3,000원에 달한다.
더 큰 문제는 삼성물산이 지주사로 강제전환된다는 점이다. 현행 공정거래법에 따르면 1대 주주로서 보유한 자회사의 지분 가치가 회사 전체 자산의 50%를 넘으면 지주회사로 전환된다. 삼성물산이 지주사로 전환되면 공정거래법에 따라 자회사 주식 확보 비율(현행 상장사 20%, 공정경제3법 통과시 30%)을 맞춰야 한다. 현행 법대로만 해도 삼성전자 지분을 9% 가량 추가로 사들여야 하는데, 단순 비용만 30조원 이상이 필요하다.
금융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도 대안으로 나온다. 삼성 그룹을 금융 계열사와 전자 계열사로 양분하는 것으로, 과거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이 삼성전자 지분 문제 해법으로 제안한 방법이기도 하다. 삼성생명을 지주사와 사업회사로 분할해 금융계열사는 '생명금융지주'에 두고, 삼성전자 등 나머지는 '생명사업회사'(자회사)에 두는 방식이다. 그렇게 되면 현행법상 생명사업회사가 삼성전자를 1대주주로 직접 지배할 수는 없지만, 2대 주주로 내려간다면 삼성전자 지분을 소유하는 것은 허용된다. 결국 현재 삼성전자의 1대 주주인 삼성생명(8.5%)이 2대 주주인 삼성물산(5.0%)에게 삼성전자 지분 1.8%포인트만 넘겨 자리를 바꾸면 문제는 해결된다. 앞선 방안보다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매각 부담이 적다.
다만 이 역시 삼성물산의 삼성전자 지분 가치가 올라가 지주사 강제전환이란 허들에 봉착한다. 김동양 NH투자증권 애널리스트는 "삼성물산이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1.8%를 가져가게 되면 삼성물산의 자회사 지분가치는 60.7%로, 공정거래법상 지주사 요건에 적용된다"며 "이 방법이 가능하려면 삼성물산의 지주사 전환을 피하기 위한 별도의 방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아직까지 보험업법의 국회 통과가 남아 있는 데다, 이 부회장의 사법리스크도 상존한 만큼 당장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 진행은 어려울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법 개정 등 상황 변화를 지켜보면서 일단은 이 부회장이 막대한 상속세 부담을 감수하고라도 부친의 계열사 지분을 상속받아 현 체제를 유지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