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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판 와인스틴'... 유명 미술가 30년 성폭력 폭로에 경찰 첫 공개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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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판 와인스틴'... 유명 미술가 30년 성폭력 폭로에 경찰 첫 공개 대응

입력
2020.10.2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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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 오마탈리 전직 기자 증언으로 촉발
성폭력 책임 여성에 전가 이란 금기 깬 실명 폭로
페르시아어 '미투'? 변화 임계점 넘어설지 주목

지난 2월 이란 테헤란 시내의 한 국회의원 선거 투표소에서 마스크를 쓴 여성들이 줄지어 서 있다. 테헤란=EPA 연합뉴스

지난 2월 이란 테헤란 시내의 한 국회의원 선거 투표소에서 마스크를 쓴 여성들이 줄지어 서 있다. 테헤란=EPA 연합뉴스

남성이 사회적으로 우위에 있는 이란에서 오랫동안 금기시 돼 왔던 성폭력 고발이 사회 전반으로 번지고 있다. 성폭력 피해의 책임을 오히려 여성에게 전가하는 분위기 속에서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대학 교수, 예술가 등 각계 인사에 대한 ‘미투’(MeTooㆍ나도 고발한다) 운동이 지난 8월 이후 두 달째 지속되고 있다. 이슬람권 미투 운동인 ‘모스크미투’로 시작된 아랍권의 사회 변화 요구가 다시금 힘을 얻고 있다는 평가다.

미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22일(현지시간) 이란의 유명 현대미술가 아이딘 아그다실루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며 이름 또는 얼굴을 밝힌 피해자 13명의 인터뷰를 실었다. 30년간 성폭력을 저질러 온 그의 실태는 지난 8월 22일 사라 오마탈리 전직 기자가 SNS를 통해 14년 전 그에게 성폭행을 당한 것을 밝히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를 계기로 아그다실루가 상습적으로 실습생들을 성추행했다고 밝하는 글이 빠르게 확산됐다. NYT는 "아그다실루는 '이란의 하비 와인스틴'"이라며 "업계 지위를 이용해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에게 성적 학대를 자행해 왔다"고 전했다. 아그다실루는 40년 이상 이란 시각예술 분야에 헌신한 공로로 2016년 프랑스 최고 훈장인 '레지옹 도뇌르'를 받은 예술계 권위자다.

이어진 국립 테헤란대 주변에서 서점을 운영한 교수 케이반 이맘 베르디의 성폭행 가해 사실 폭로가 미투 운동 확산의 기폭제가 됐다. 그를 고소한 30명의 피해 여성은 이란에서 주로 혼외정사를 가리킬 때 쓰이는 포괄적 형법 용어 ‘불법적 성관계(zina)'라는 표현을 거부하고 #성폭행(#Tajavaz), #성희롱(#Azar-e Jensi), #가해자(#Motajaves)의 분명한 해시태그를 사용하며 공론화를 이끌었다. 이란 언론 라디오파르다는 "이 같은 미투 관련 해시태그가 하루 만에 페르시아어 기반 트위터 사용자가 가장 자주 언급하는 해시태그 10위권 안으로 부상했다"고 전했다.

이에 지난 12일 이란 당국은 처음으로 성폭행 범죄에 대한 공개 대응에 나섰다. 테헤란 경찰청은 베르디를 체포해 조사한 결과 약 300명의 추가 성폭행 피해자가 있음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조사를 맡은 사르다르 호세인 라히미 테헤란 경찰청장은 이례적으로 현지 언론을 통해 "신원은 철저하게 보장한다"며 "기소를 하지 않을테니 피해 여성은 사실을 숨기지 말고 경찰에 신고하라"는 메세지까지 냈다. 이란은 혼인하지 않은 남녀의 성관계를 형사처벌 대상으로 규정해 성범죄 피해자가 조사 과정에서 되레 처벌 받는 일이 흔하다.

전 세계적인 미투 운동이 일어난 지 3년이 돼 가지만 2018년 하지를 비롯한 종교적 활동 중 성적 괴롭힘을 당한 경험을 공유한 모스크미투 이후 이란은 변화가 더디게 진행 중이다. 미비한 법적 보호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특히 2009년 개정된 이슬람 형법에 따라 성폭행 사건은 사형에 처해진다. 이러한 법 규정은 가부장적 사회 규범과 결합돼 피해자에게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터키 국영 TRT 방송에 따르면 이란 수도 테헤란에서만 매년 약 1,600건의 성범죄가 기록되고 있지만 실제 일어나는 성범죄의 80%는 보고조차 되지 않는 것으로 추정된다.

장채원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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