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원인 아니라는 사실 증명됐다면
?예방접종과 질병 간 인과관계 인정해야"
인플루엔자(독감) 예방접종 직후 희귀질환에 걸린 70대 노인에 대해 보건당국의 보상 책임을 인정하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최근 독감 백신 접종 후 사망 신고가 연일 늘어나고 있는 가운데, 예방접종 피해보상 범위를 넓힌 취지로 볼 수 있어 주목된다.
2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행정3부(부장 이상주)는 전날 A(74)씨가 질병관리청을 상대로 “예방접종 피해보상 신청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며 낸 소송의 항소심에서 1심의 각하 판결을 깨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2014년 10월 7일 A씨는 경기 용인시의 한 보건소에서 독감 예방 접종을 받았다. 그런데 11일 후, 허리와 오른쪽 다리에서 힘이 빠지는 증세가 느껴져 응급실을 찾았고 ‘길랑바레증후군’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길랑바레증후군은 말초 신경에 염증이 생겨 팔다리에 통증과 마비가 일어나는 질병이다. 예방 접종 후에도 발병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듬해 A씨는 질병청(당시 질병관리본부)에 예방접종 피해보상을 신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질병청은 A씨가 마비 증상을 느끼기 전 과민성대장증후군 진단을 받은 사실을 들면서 “길랑바레증후군이 위장관 감염에 의한 것인지, 백신에 의한 것인지 불명확하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에 A씨는 소송을 냈다.
1심은 각하 판결을 내렸다. 질병청이 최초 기각을 통지한 날을 기준으로 볼 때, “행정소송을 낼 수 있는 기간(처분을 알게 된 후 90일)이 이미 지났다”는 이유였다. 각하는 소송이 형식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경우, 판단 없이 재판 절차를 끝내는 것을 뜻한다. 이에 A씨는 “최초 기각 처분이 아니라, 이의신청을 다시 기각한 처분을 취소해 달라”면서 청구 내용 일부를 변경해 항소했다.
항소심은 적법한 소 제기로 보고 재판을 진행했고, “예방 접종과 길랑바레증후군 사이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있다”면서 A씨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감정 결과 A씨가 방문했던 병원에서 위장관 감염을 일으키는 균이 발견되지 않았다”며 “길랑바레증후군이 위장관 감염에 의해 발생한 게 아니라는 사실이 증명됐다”고 판단했다. ‘다른 원인에 따른 발병은 아니다’라는 게 입증된 이상, ‘예방접종과 질병 간의 관련성도 인정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재판부는 “접종과 발병이 시간적으로 가깝다는 점도 함께 고려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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