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의자 자살한 여고생 실종사건... 프로파일링이 '그날 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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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의자 자살한 여고생 실종사건... 프로파일링이 '그날 일' 밝혔다

입력
2020.10.26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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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수사의 첨병, 프로파일러의 세계]
<6> 전남 여고생 살인 사건

편집자주

범죄 드라마나 영화에서 '초능력자'처럼 등장해 범죄자의 감정선을 무너뜨리는 프로파일러. 그러나 실제 프로파일러는 끊임없이 범죄자 심리나 행동패턴을 분석해 범행의 이유를 찾는 나침반 역할을 합니다. 한국일보는 격주 월요일마다 범죄 현장 뒤에서 치열한 두뇌싸움을 벌이는 프로파일러의 세계를 조명합니다.

2018년 7월 6일 오전 전남 강진경찰서에서 수사과장이 여고생 살인사건과 관련 중간 수사상황을 발표하고 있다. 강진=연합뉴스

유력한 용의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피해자가 어디 있는지도 모른다. 목격자마저 전혀 없다. 그러나 피해자가 살해됐을 가능성은 매우 높아 보인다. 범행 장소로 추정되는 넓은 야산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 사건에 세상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결국 경찰이 모든 것을 밝혀내야 했다. 누구를 쫓을 지, 어디까지 야산을 뒤져야 할 지, 모든 것이 막막하기만 하던 2018년 6월, 그 혹독했던 여름을 전남경찰청 범죄분석팀장(프로파일러) 차운(54) 경감은 절대 잊지 못한다.

여고생은 실종, 유일한 용의자는 자살

2018년 6월 16일 전남의 시골 마을. 사위가 이미 어두워졌지만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이모(16)양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이양 어머니는 딸 친구들을 수소문한 끝에 이양이 '아르바이트를 시켜준다는 아빠 친구를 따라 갔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 사람은 식당을 한다고 했다.

어머니는 문득 인근 마을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김모(51)씨를 떠올렸다. 어머니는 딸의 소재를 묻기 위해 김씨 집을 찾아가 현관문을 두드렸지만, 김씨는 급히 뒷문으로 도망쳐 버렸다. 누가 봐도 수상한 김씨의 반응에 어머니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경찰은 즉시 김씨의 소재를 찾아 나섰다.

그러나 이튿날 오전 6시20분쯤, 김씨는 자신이 운영하던 식당 근처 공사장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타살 흔적 없는 명백한 자살의 정황. 김씨는 유서도 남기지 않고 이양의 소재를 끝내 미궁으로 빠뜨린 채 허무하게 세상을 등졌다.

전남 여고생 살인사건 재구성


피의자가 사라지면서 여고생 실종 사건은 순식간에 미제가 될 위기에 놓였다. 프로파일러로 사건에 투입됐던 차 경감은 "조각처럼 흩어진 정황을 퍼즐 완성하듯 조합하며 사건을 재구성해야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경찰은 폐쇄회로(CC)TV와 목격자 증언 등을 토대로 이양의 실종 과정을 재구성했다. 이양 아버지의 친구였던 김씨는 실종일 며칠 전, 이양 부모 몰래 이양에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제안했다. 평소 아르바이트를 하고 싶어 했던 이양은 의심 없이 제안에 승낙했고 실종 당일인 16일 오후 1시 30분 김씨를 만나러 나섰다.

오후 2시 16분 창문이 짙게 선팅된 김씨의 차가 김씨 고향 마을의 야산으로 향하는 장면이 CCTV에 잡혔다. 이양의 휴대폰 신호 역시 그날 김씨 차량의 이동 행적과 일치했던 것으로 보아, 김씨와 이양이 함께 있었을 것이 확실해 보였다. 김씨의 차는 야산 밑 마을에서 2시간 이상 머물렀고, 오후 4시 24분쯤 이양의 휴대폰이 꺼졌다. 김씨의 차량은 오후 5시쯤 마을을 유유히 빠져 나갔다.

세 가지 시나리오로 넓혀간 시신 수색망… 경찰견이 찾아냈다

결국 이 사건을 해결할 결정적 단서는 그 야산에 있었다. 이제 분석을 마치고 현장으로 나가, 이양의 흔적을 찾는 게 급선무였다. 그러나 무작정 그 넓은 야산을 다 뒤질 수는 없는 노릇. 차 경감은 전국에서 모인 프로파일러 5명과 광역분석회의를 열고 시체 매장 및 유기 장소를 찾기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를 즉각 그려 나가기 시작했다.

프로파일러들은 '범인이 살인 후 시신을 이동시키는 경우'에 대한 외국의 문헌과 국내 사례들을 참고했고, 그 결과 수색 범위를 좁히기 위한 첫 범죄분석보고서를 완성했다. 1차 수색 범위는 차량 안에서 범행이 일어났을 경우를 고려한 것으로, 매장 가능성이 있는 야산 밑 차량 주차지 30m 이내가 해당됐다. 2차 수색 범위는 차량 밖에서 범행이 이뤄졌을 경우로 주차지로부터 500m 이내까지 설정돼, 시신 매장뿐 아니라 유기 가능성까지 염두에 뒀다. 3차 범위는 김씨가 자택으로 돌아가면서 중간에 증거물 등을 버렸을 가능성을 고려해 자택까지 가는 길을 포함했다.

프로파일링을 통해 논리적으로 정한 수색 범위를 바탕으로 헬기와 드론 등이 동원됐고, 경찰 기동대 등 1,080명의 인력이 투입됐다. 보통 범인을 잡을 때 수색ㆍ포위망을 좁혀가는 것과 달리, 1차 범위를 시작으로 범위를 넓히는 방식으로 수색을 이어갔지만 경찰은 이양의 시신을 찾지 못했다.

수색 기간은 늘어가는데 범죄분석보고서대로 시신이 발견되지 않자 차 경감은 속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러다 사건 발생 8일 만인 24일 오후 3시쯤 야산 정상 부근에서 경찰견이 결국 이양의 시신을 발견했다.

2018년 6월 24일 전남 강진군 도암면 한 야산에서 경찰이 실종 여고생으로 추정되는 시신을 수습하고 있다. 강진=연합뉴스


"자존심 강한 완벽주의자였어요" 피의자를 심리부검하다

시신을 찾았다고 수사가 끝나는 게 아니었다. 이미 부패가 진행된 시신만으로 범죄 증거와 정황을 파악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피해자도 피의자도 조사할 수 없어 다양한 억측만 등장하던 상황에서 경찰은 '범행 동기'를 찾아야 했다. 그 순간 차 경감은 ‘심리 부검'을 돌파구로 떠올렸다. 평소 김씨를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을 상대로 그의 전반적인 삶, 생활 모습과 환경,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과 행동 등을 재구성하기 위한 사후조사 과정을 거치는 것이었다.

차 경감과 프로파일러들은 용의자 김씨의 형제, 이혼한 부인, 현 아내, 직장 동료, 지인 등 7명을 상대로 면담을 진행하면서 김씨에 관한 모든 자료를 수집했다. 전국에서 모인 6명의 프로파일러들이 일주일 간 머리를 맞대 심리부검 보고서를 작성하고 나자 김씨의 성격이나 생전 생활 모습이 그려졌다.

그랬더니, 활달한 성격에 성실하고 부지런한 가장으로만 알려져 있던 김씨의 겉모습과는 다른 '악인의 모습'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차 경감은 새롭게 발견한 김씨를 이렇게 표현했다. “성에 대한 집착이 강하고 임기응변에 능하며 자존심도 강하고, 한 마디로 완벽주의자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주변인들 증언에 의하면 김씨는 불우한 유년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학교를 중퇴하고 덤프 트럭운전과 사업을 벌이며 돈을 악착같이 벌었다. 하루 스케줄을 칼 같이 정해두고 일관적으로 지키는 사람이었으며, 자신이 운영하던 개 농장은 개털도 찾아보기 힘들 만큼 깨끗하게 정돈해 두는 깔끔한 성격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자식들에게 엄하지만 따뜻했던 사람으로 기억했다. 다만 특이했던 건 김씨를 “한없이 좋은 사람이었다”고 증언하며 그의 범행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쪽에서는 충분히 그럴 만한 사람”이라고 말하는 등 판단이 극명하게 엇갈렸다는 점이었다.

차 경감과 프로파일러들은 지인 증언을 토대로 "김씨가 성범죄를 치밀하게 계획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수사팀 역시 김씨가 범행 전 수면유도제 성분의 약물을 미리 준비하는 등 범죄를 계획한 정황을 포착했다. 현장에서 수사팀이 알아낸 정황과 그에 따른 강력한 심증들이 프로파일러 분석을 통해 신빙성을 얻게 된 것이다.

실종된 이모양의 시신이 발견된 2018년 6월 24일 경찰들이 현장 수습에 나서고 있다. 강진=뉴스1

그러나 살인에 대해서만큼은 김씨가 범행 과정에서 예기치 못한 상황으로 인해 우발적으로 저질렀을 것이라는 결론이 나왔다. 평소 치밀하고 자존심도 센 김씨가 살인까지 계획했다면, 이양 어머니가 집으로 찾아왔을 때 급히 도망가기보다는 준비한 시나리오에 따라 능숙하게 대처했을 것이라는 게 차 경감의 분석이었다.

김씨에 대한 심리 부검은 범행 동기를 밝혔을 뿐 아니라, 그간 이양을 따라다니던 각종 억측을 해소하는 데도 도움이 됐다. 당시 김씨를 순순히 따라간 이양을 두고 원조교제나 부모와의 원한 등 각종 추측이 난무했다. 차 경감은 이양 아버지, 선생님, 친구 등을 대상으로 이양에 대한 심리 부검도 함께 진행했다. 그 결과 기존의 억측들은 모두 사실이 아니며, 이양은 평소 간호사관학교 진학을 꿈꾸면서 아르바이트를 원하던 평범한 가정의 학생이었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었다.

이후 경찰 수사를 통해 김씨가 차량에 보관했던 낫자루와 집에 둔 전기이발기 등에서 이양의 유전자가 발견되면서, 김씨는 사건 20일 만인 7월 6일 피의자로 전환됐다. 피의자가 이미 사망했기 때문에 사건은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될 수밖에 없었지만, 수사팀과 프로파일러들의 노력으로 살인의 경위를 밝히면서 사건을 마무리 할 수 있었다.

최은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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