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6일자 이 지면에서 얼굴을 가리는 복식을 금지하면서도 방역용 마스크 착용을 의무화해야 하는 유럽의 고민을 다루었다. 탈고 후 게재를 기다리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마스크 착용을 거부하던 사람이 그리된 것을 보면서 이번에는 미국의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은 마음이 발동했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미국도 얼굴을 가리는 복식을 금지하는 법을 가지고 있다. 이를 일반적으로 '마스크금지법(mask ban)'이라고 한다. 1845년 뉴욕주에서 처음으로 제정됐다. 허드슨강 계곡 지구의 농민들이 착취적 지대 징수에 저항해 인디언 복장에 얼굴을 가리고 집단행동을 한 것이 기화가 됐다. 그 후 여러 주가 마스크금지법을 제정했는데 전혀 다른 배경에서였다. 얼굴과 몸을 가리고 흑인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는 백인우월주의 집단 쿠클럭스클랜(KKK)의 행동을 규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20세기 들어 '공포심을 조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또는 '범죄행위를 수행하면서' 마스크를 착용하는 경우에만 처벌한다는 식으로 대상 행위를 좁히긴 했지만 최근까지 18개 주와 여러 지자체가 마스크금지법을 가지고 있었다.
2004년 제2연방항소법원은 집회를 금지당한 KKK 연관조직의 법률집행정지청구를 인용한 원심을 파기하고 뉴욕주 마스크금지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는 미합중국헌법 수정 제1조에 반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그런데 보편적 언어로 이루어진 법률은 본질이 다른 사건에도 적용되는 법이다. 백인우월주의 무리의 횡포를 막기 위해 제정된 마스크금지법이 탄압을 걱정해 얼굴을 가리고 집회와 시위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의 자유를 제한하게 된 것이다. 팔레비 왕정을 비판하는 시위를 벌인 이란 학생의 마스크 착용을 법원이 옹호한 사례가 있고, 심지어 KKK 단원도 대중의 위협에 노출된다는 이유로 얼굴을 가릴 권리를 보호받은 일이 있긴 하다. 그러나 '월스트리트 점령' 그리고 반트럼프 시위와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집회에 마스크금지법이 활용되었고, 특히 KKK의 행동을 규제한다는 명분으로 만든 법으로 백인우월주의에 반대하는 시위를 억압하는 역설적 상황이 벌어짐으로써 논란이 일었다.
더욱이 33개에 달하는 주가 코로나19 유행에 따라 마스크 착용을 강제하게 되었으니, 마스크금지법의 귀추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는 것은 당연했다. 방역용 마스크 착용의 강제도 헌법을 들먹이는 저항을 받고 있다. 저항하는 사람들은 적법 절차와 프라이버시, 표현의 자유를 내세운다. 그에 대해서는 주 정부의 의무적 예방접종을 합헌으로 선언한 1905년의 판례를 원용해 의무적 마스크 착용을 옹호하는 입장이 더 설득력을 누린다. 그러나 계보를 달리하는 두 마스크에 대한 상반되는 처우에서 오는 혼란은 불가피했다. 경찰에 압살당한 흑인 조지 플로이드를 추모하는 대규모 집회가 시험대가 되었다. 감염 확산을 피하기 위해서는 마스크 착용이 필수적인데, 집회 및 시위 상황에서는 그것이 위법한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자기들의 마스크도 허용해야 한다고 비아냥대고 심지어 KKK 복식을 하고 집회를 훼방놓는 일도 있었다. 결국 뉴욕주와 워싱턴DC는 마스크금지법을 폐지했다. 그 전에 이미 앨라배마와 조지아는 코로나19 유행이 종식될 때까지 마스크금지법의 집행을 중지한다고 선언했다.
마스크라는 물건에 이처럼 많은 역사적ㆍ사회적 우여곡절이 담겨 있다. 물건과 사람이 맺는 관계에 따라 세상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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