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바쁜 일상에서 일로, 인간관계로 이리저리 치이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쏟아지는 마음 속 분노, 욕구로 해소하는 이 마음. 직장인 우울증 에세이가 위로를 준다고 해서 책을 들어보지만 진정한 힐링인가요? 해결책은 뭐죠? 명상, 만족이 안됩니다. 당신의 분노도 애도가 필요합니다. 그런 분들에게 ‘건강분노세트’를 소개합니다….”
지친 직장인이라면 귀가 솔깃해질 상품이 나왔다. 인간사회 위로 날아가는 파리 그림이 그려진 쿠션과 색칠하기, 글쓰기, 찢기, 접기, 붙이기 등을 유도하는 워크북으로 구성된 ‘건강분노세트’다. 상품을 기획한 이는 9년 전 북한에 피자 만드는 법 동영상을 배포하는 퍼포먼스 ‘모두를 위한 피자’(2011년)를 선보였던 디자이너 김황(40) 울산과학기술원 디자인학과 교수다.
김황은 “자본주의가 발달하면서 사람들의 분노를 다스리는 정신건강까지도 명상 산업 등 자본에 종속됐다”라며 “명상 산업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라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임없이 생산할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성장주의에 대한 고찰에 관한 활동이다”고 설명했다.
정신건강뿐 아니라 환경과 평등, 사회안전 등 자본에 종속된 현실을 풍자한다. 일회용 플라스틱 컵 사용의 주범인 커피전문점은 쓰레기 생산 주범의 이미지를 탈피하기 위해 텀블러를 만들고 소비자들은 이를 다시 소비한다. ‘기후 ±1 워터북’은 이런 무한 생산되는 환경 산업의 내용을 그린 책이다. 영국 스포츠 크리켓이 남성 성기 보호대를 도입하고 100년이 지나서야 머리를 보호하는 헬멧을 도입한 점에 주목해 남성 성기에 대한 절대적 보호로 보편화된 세계관에 반기를 드는 ‘BR 차기 핸드북&양말’ 도 함께 판매한다.
그는 디자인이 이미 자본에 전용된 지 오래라고 지적한다. 그는 “가치 있는 행동, 의미 있는 소비라는 미명 아래 디자인과 예술은 소비를 촉진해왔고, 이는 소비자들에게도 일종의 면죄부를 제공했다”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을 안 할 수도, 할 수도 없는 상황에 디자인이 갇혀 버렸지만 계속 포기하지 않고 대안의 목소리를 내고자 한다”고 말했다. 기존의 시각적 작업을 넘어 사회의 흐름을 바꾸고, 사고방식을 재구성하는 그의 작업을 ‘비평적 디자인’이라 한다.
자본주의에 저항하려는 그의 노력은 역설적으로 가장 자본주의적인 방식을 택한다. 빠른 시간 내에 여러 명으로부터 자본을 조달하는 상품 판매 방식인 라방(라이브 방송)과 크라우드펀딩(온라인플랫폼에서 다수의 개인으로부터 자금을 모으는 방식)을 통해 상품들을 판매한다.
“‘건강분노세트’는 5만원, 양말과 팬티, 핸드북이 들어간 ‘지하페미장군 세트’는 11만원이 넘습니다. 사기는 아니지만 황당한 가격 아닙니까. 거래가 성사될 수 없게 의도적으로 매긴 가격이에요.” 상품들은 22일 오후 8시 그가 꾸린 미디어 게릴라 조직 ‘오브나우 컴퍼니’의 라방 ‘굳굳마켓’에서 판매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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