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로 동성 커플 법적 지위 부여 주장
보수 측? "교회 가르침과 충돌해" 반발
"性소수자 인식 변화는 어려워" 지적도
“만일 동성애자가 선한 의지를 갖고 하느님을 찾는다면 어떻게 그를 심판할 수 있겠는가”(2013) “낙태를 한 여성이 용서를 구하면 모든 사제에게 죄를 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기로 했다”(2015) “이혼ㆍ재혼자도 영성체를 모실 수 있다”(2015) “동성 커플을 법적으로 보호할 수단은 ‘시민 결합(civil union)’ 법을 만드는 것”(2020).
2013년 즉위 후 성(性)과 결혼제도에 관해 꾸준히 교회의 변화를 촉구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주요 발언이다. 교황이 이번엔 동성 커플도 가족을 이룰 권리가 있다는 공개 입장을 내놨다. 역대 교황 중 최초로 동성 부부에도 법적 권한 부여가 가능하다는 해석을 내린 것이다. 상당히 진일보한 견해지만 동성애를 죄악시해 온 가톨릭계의 전통에 비춰보면 내부 보혁 논쟁이 불붙을 가능성도 그만큼 커졌다.
교황은 21일(현지시간) 로마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다큐멘터리 ‘프란치스코’에서 “동성 커플의 시민 결합을 인정하는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해당 다큐멘터리는 환경, 빈곤, 인종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대하는 교황의 입장을 담았다.
예수회 출신으로 교단의 ‘아웃사이더’로 평가 받는 교황은 교회에 맞게 세상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보수파와 달리 교회가 사회에 맞출 필요가 있다고 본다. 시민결합법 도입 주장도 같은 맥락이다. 동성애를 받아들이는 여론이 증가한 점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시민 결합을 포함해 동성커플의 법적 지위를 인정한 나라는 43개국. 미국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10년 전 42%에 불과했던 가톨릭 신자의 동성애 인정도 지난해 61%로 크게 높아졌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교황은 지금까지 실질적인 정책을 제안하기보다 이해와 관용을 강조했다”며 “성소수자들의 법적 권리를 반대했던 교회의 놀라운 변화”라고 해석했다.
문제는 13억 가톨릭 신자들이 수장의 의견을 어떻게 받아들이냐다. 벌써부터 성적 지향과 관련한 내부 대립이 격화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가령 북유럽 가톨릭 교회 주교들은 성소수자 보호에 앞장서 왔지만, 폴란드와 아프리카 등에선 동성애를 여전히 교리와 맞지 않는 것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이 교황의 발언을 ‘월권’으로 규정하고 반발할 여지가 생긴 셈이다. 가톨릭 내 대표적 보수파 인사인 미국의 토머스 토빈 주교는 “교황의 말은 교회의 오랜 가르침과 명백히 충돌한다”면서 “교회가 부도덕한 동성결합을 수용해서는 안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교회와 동성애자들의 연대를 주장해온 제임스 마틴 미 예수회 신부는 “교회의 성소수자 지원에 있어 중대한 진전”이라며 “극단적 반발심을 가진 주교들에 강한 메시지를 준다”고 환영했다. WSJ는 “(시민결합 발언이) 유럽과 북미, 기타 서방국가들에서 성과 관련한 교회 내 '문화 전쟁'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물론 이번 발언이 갈등 표출 이상의 변화로 이어지지 않을 것이란 목소리도 있다. 가톨릭 교회의 성소수자 포용을 추구하는 단체 ‘디그니티 유에스에이’는 신문에 “동성결혼이 아닌 동성 시민결합에 대한 지지”라며 “교회는 아직도 ‘영겁’의 시간만큼 뒤처져 있다”고 강조했다. 예수회 잡지 ‘치빌타 카톨리카’ 편집장이자 교황청 문화ㆍ사회홍보평의회 고문인 안토니오 스파다로 신부 역시 “교황의 발언은 교리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며 논란을 일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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