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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탈당, ‘소신파 전멸’ 자초한 민주당의 예견된 사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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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태섭 탈당, ‘소신파 전멸’ 자초한 민주당의 예견된 사태

입력
2020.10.22 04:30
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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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민주당 탈당선언을 한 금태섭 전 의원이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더불어민주당 탈당선언을 한 금태섭 전 의원이 2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사무실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뉴스1

2020년 더불어민주당에는 다양과 포용이 존재하는가. 민주당은 대화와 타협을 추구하는 정당인가. 21일 민주당 탈당을 선언한 금태섭 전 의원의 선택은 사실상 ‘다른 목소리’가 실종된 민주당의 현실에 무거운 화두를 던졌다. 당론에 이견을 냈다는 이유로 원색적 비난, 총선 공천 배제, 징계 회부, 거듭된 징계 결정 지연 등에 노출된 그의 수난사는 ‘내부 비판’이 살아남기 어려운 민주당의 토양을 여실히 보여준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이견의 조율을 본령으로 하는 공당의 역할에 강한 경고등이 커졌지만, 이날 민주당 일부 인사들은 “큰 의미가 없다”며 여파 축소에 분주했다.


"건강한 정당 되길 바랐는데"

금 전 의원은 이날 한국일보와 전화통화에서 “당이 경직되거나 편가르기를 계속 해선 안 된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개진했지만 변하질 않아, 당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결정에 이르렀다”고 했다. 그는 “늘 민주당이 강한 정당이 되길 바랐지만 그건 건강한 정당이지, 힘이 세다고 편을 가르고 생각이 다른 사람의 길을 막자는 것은 아니었다”고 아쉬워했다.

그는 페이스북에 징계 재심 청구 5개월째 묵묵부답인 당의 대처를 언급하며 “합리적 토론도 없고 결정이 늦어지는 이유도 알려주지 않은 채, 그저 어떻게 해야 가장 욕을 덜 먹고 손해가 적을까 계산하는 게 아닌가 의심스러울 따름”이라며 “이런 상황에서는 차라리 제가 떠나는 것이 맞는다고 생각했다”고 썼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예전의 유연함과 겸손함, 소통의 문화를 찾아 볼 수 없을 정도로 변했다”며 “김대중ㆍ노무현이 이끌던 민주당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모습”이라고 우려했다. 그는 “정치적 불리함과 인간적으로 견디기 힘든 비난을 감수하고 해야 할 말을 하면서 무던히 노력했지만, 더 이상은 당이 나아가는 방향을 승인하고 동의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마지막 항의의 뜻으로 충정과 진심을 담아 탈당계를 낸다”고 씁쓸해했다.


올해 2월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금태섭 당시 민주당 의원이 다른 의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민주당에선 '조국백서추진위원회'의 필자였던 김남국(38) 변호사가 금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강서갑에 추가 공천 신청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연합뉴스

올해 2월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 참석한 금태섭 당시 민주당 의원이 다른 의원들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민주당에선 '조국백서추진위원회'의 필자였던 김남국(38) 변호사가 금 의원의 지역구인 서울 강서갑에 추가 공천 신청을 한다는 소식이 알려져 파문이 일었다. 연합뉴스


조국에 '아픈 질문' 했다가 미운털

검사 출신의 금 전 의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소속 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의 인연을 계기로 2012년 정계에 입문했다. 2016년 총선에서 당선돼 민주당 소속으로 활동했다. 20대 국회 임기 내내 ‘소신 행보’로 눈길을 끌었다. 민주당이 차별금지법에 대한 당론을 정하지 못한 가운데 퀴어 축제에 참가해 SNS에 인증 사진과 후기를 남긴 일 등이 대표적이다.

‘밉지 않은 Mr. 쓴소리’로 통하던 금 전 의원이 여권 강성 지지자들의 타깃이 되기 시작한 계기는 지난해 ‘조국 사태’다. 자녀 입시 특혜 의혹에 휩싸인 조국 전 법무부장관에 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인사 청문회가 단초였다. 금 전 의원은 여당 청문위원 중 유일하게 조 전 장관에 ‘아픈 질문’을 이어갔다. 지지자들로부터 “야당이냐”는 비난이 쏟아지자 금 전 의원은 “유권자가 궁금해하는 질의를 제대로 해야 젊은 이들이 민주당에 대한 기대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서울광장에서 열린 20주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모습. 왼쪽 볼에는 퀴어축제를 축하하는 의미의 페이스 페인팅을 했고, 가방에는 퀴어 깃발을 내걸었다. 금태섭 의원 페이스북

금태섭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해 서울광장에서 열린 20주년 서울퀴어문화축제에 참여한 모습. 왼쪽 볼에는 퀴어축제를 축하하는 의미의 페이스 페인팅을 했고, 가방에는 퀴어 깃발을 내걸었다. 금태섭 의원 페이스북


공수처법 '기권표'에 시작된 수난사

탈당에 결정타가 된 것은 이어진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논란이다. 금 전 의원은 거듭 “누구보다 검찰개혁을 간절히 바라지만, 특수부를 강화해 원하는 적폐 수사는 시키면서 공수처를 만들어서 별개로 검찰을 통제하겠다는 것은 검찰 조직 원리에 대한 통찰이 부족해서 나온 구상”이라는 주장을 폈다. 공수처 설치를 양보할 수 없는 전제로 추진해온 당청의 입장에선 부담스러울 수 밖에 없는 이견인 셈이다. 지난해 12월 공수처 설치 법안이 국회 본회의에 회부되자 금 전 의원은 기권 표를 던졌고, 뭇매를 맞았다.

이 ‘기권 표’는 이후 21대 총선 당내 후보 경선 탈락, 윤리심판원 회부, 경고 처분 등으로 이어졌다. 당의 징계 사유는 “이미 충분히 논의해 ‘강제 당론’으로 정한 사항인 만큼 찬성 표결에 따랐어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금 전 의원은 “충분히 논의했다는 전제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데다, 반대 표결이나 불참을 이유로 소속 의원을 징계한 전례 자체가 없다”고 반박해왔다. 금 전 의원은 또 징계 재심청구서에서 “국회의원이 당론에 반하는 표결을 했다는 이유를 국회의원의 징계사유로 정한 당규가 존재한다면 그 자체로 비민주적 위헌 정당임을 표방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5개월 간 이어진 민주당의 무응답 끝에, 금 전 의원이 탈당에 이르는 과정이 시사하는 바는 가볍지 않다. ‘검찰 개혁’과 같은 정권 핵심과제를 둘러싼 내부의 근본적 의문조차 품지 못하는 정책 추진 방식, 이견을 냈다간 ‘내부 총질’ 프레임 속에 문자 폭탄과 원색적 비난 등을 감수해야 하는 소속 의원들의 처지, 소속 의원들조차 지지자들의 비난에 동조하는 ‘원팀ㆍ원 보이스’ 풍토 등이 뒤엉켜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태섭 의원이 1일 오전 열린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해 4월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금태섭 의원이 1일 오전 열린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제1소위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소신파만 "남은 숙제 풀겠다" 반성

상황이 이런데도 민주당에선 냉담한 반응이 적지 않았다. 허영 대변인은 기자들의 질문에 “자연인으로서의 탈당에 큰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다”며 의미를 축소했다. 정청래 의원은 페이스북에 "어차피 예고됐던 일”이라며 “한때 한솥밥을 먹었던 철수형(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이 외로우니 이럴 때 힘 보태주라”고 비꼬았고, 김남국 의원은 "이기적인 철새일 뿐"이라고 깎아 내렸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거듭된 질문에 “아쉬운 일”이라며 “충고는 저희들이 마음으로 받아들이겠다”고만 짧게 답했다.

깊은 책임감을 다진 건 금 전 의원 탈당으로 더 소수가 된 민주당 일부 소장파 의원들뿐이었다. 박용진 의원은 이날 입장문에서 “(금 전 의원이) 남긴 글에서 당에 대한 마지막 애정과 회한이 절절하게 느껴졌다”며 “고민를 모르는 바 아니나, 탈당으로 충정을 보이겠다는 말씀에 동의는 어렵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는 민주당이 보여줬던 포용정당, 국민정당의 길을 더 확대해 더 큰 기여를 할 정당으로 만드는 일에 헌신하겠다”며 “그 과정에 혹시 몰이해와 비난이 쏟아지더라도 소신을 가지고 정직하게 할 말은 하고 할 일은 하면서 당의 변화를 만들겠다”고 각오했다.

조응천 민주당 의원 역시 이날 페이스북에 “금 의원의 글에 많은 부분 공감한다”면서도 “그간 우리가 비난을 감수하고서라도 쓴소리를 마다치 않았던 것은 민주당을 더 건강하고 상식적인 집단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고 아쉬워했다. 그러면서 “금 의원이 남기고 간 숙제를 풀기 위해 더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김혜영 기자
양진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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