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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희, 아시아ㆍ중남미에 美지지까지 확보한 듯...막판 맹추격

입력
2020.10.21 22:00
2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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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 앞 WTO사무총장 선거 판세는?

편집자주

국내외 주요 흐름과 이슈들을 해당 분야 전문가들이 깊이 있는(deep) 지식과 폭넓은(wide) 시각으로 분석하는 심층 리포트입니다

WTO 사무총장 선거 최종 라운드에 오른 유명희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전 나이지리아 전 재무ㆍ외무장관이 지난 7월 15~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각각 출마 기자회견을 할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WTO 사무총장 선거 최종 라운드에 오른 유명희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과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 전 나이지리아 전 재무ㆍ외무장관이 지난 7월 15~16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각각 출마 기자회견을 할 당시의 모습. 연합뉴스

세계무역을 관장하는 유일한 국제기구인 세계무역기구(WTO)의 수장을 뽑는 시간이 1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모두 8명이 입후보한 WTO 사무총장 경선에서 우리나라의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은 당초 예상을 뒤엎고 두 명이 겨루는 최종 결선에 진출했다. 19일(현지시간) 시작된 3라운드 선거가 28일까지 진행되고 11월 7일 이전에 최종 결과가 발표된다. 이제 남은 마지막 관문만 통과하면 우리나라 최초의 WTO 사무총장이 탄생할 수도 있다. 과연 유명희 본부장은 세계 자유무역의 상징 WTO의 수장이 될 수 있을까?

미국, EU, 중국 중 누구도 거부하지 않아야

WTO 사무총장은 당연히 가장 많은 회원국들의 지지를 얻은 후보가 된다. 보통은 WTO 일반이사회(GC: General Council) 의장이 제네바에 있는 회원국 대사를 만나 그들이 지지하는 후보가 누구인지를 확인한다. 때론 분쟁해결기구(DSB) 의장이나 무역정책검토기구(TPRB) 의장이 회원국 대사를 만나 지지후보를 확인한 후 그 결과를 일반이사회 의장에게 전달하기도 한다. 이러한 절차를 통해 가장 많은 지지를 받은 후보가 확인되면 일반이사회 의장이 이를 발표하는데, 보통은 “특정 후보가 WTO 사무총장이 되는데 회원국들의 컨센서스가 이뤄졌다”라고 말한다. 구체적으로 몇 나라의 지지를 얻었는지는 비밀이다. 차기 WTO 사무총장으로서 회원국의 컨센서스(consensusㆍ합의)를 이뤘는지 여부만 공개된다.

WTO의 모든 의사 결정은 컨센서스에 의해서 이뤄진다. 투표제도가 있긴 하지만 중요 안건이 투표를 통해 결정된 사례는 아직 없다. 컨센서스는 만장일치와 다른 개념이다. 굳이 풀어보면 “어느 회원국도 명백히 반대하지 않는 상황”을 말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표현이 ‘명백히’다. 과연 어떠한 상태가 명백히 반대하는 상황인가? 당연히 주관적 가치판단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바로 이 때문에 WTO 의사결정과정에서 소위 강대국들이 사실상 비토(veto)권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 것이다. 즉 특정 안건에 대해 강대국이 반대하면 ‘명백히’ 반대하는 상황으로 간주되고 회원국의 컨센서스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당 안건은 부결된다.

힘이 약한 회원국이 반대하면 어떻게 될까. 주요 강대국들이 모두 찬성하면 힘이 약한 회원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의장이 컨센서스를 이루었으므로 가결됐다고 선포하면 그것으로 해당 안건은 가결된 것이 된다. 이러한 상황을 힘이 약한 회원국이 저지당했다(blocking)고 말한다. 이렇기 때문에 힘이 약한 회원국은 주요 강대국이 지지하는 안에 반대하기 어렵다.

그래픽=강준구기자

그래픽=강준구기자

사무총장의 결정에 있어서도 강대국의 영향력은 절대적이다. 아무리 많은 회원국의 지지를 얻었어도 한 강대국이 해당 후보의 사무총장 선임을 반대하면 컨센서스를 이루지 못한 것이 되어 해당 후보가 사무총장이 되기는 불가능하다. 각국이 똑같이 한 표를 행사하는듯 보이지만 최종 집계 과정에서 주요국 의사 확인이 이뤄진다. 따라서 사무총장이 되기 위해서는 먼저 강대국들의 확실한 반대가 없어야 한다. 모든 강대국들의 확고한 지지를 얻으면 가장 좋겠지만, 어느 한 강대국이라도 명백히 반대하지 않는 상황을 만드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 그럼 어느 회원국이 WTO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강대국인가. WTO 전문가들은 미국, 중국, EU를 그러한 강대국으로 보고 있다. 특정 협상의제에서는 인도도 강대국에 속한다고 볼 수 있으나, WTO 사무총장 건에는 아직 역부족이다.

정치적 지명도는 오콘조이웨알라, 통상 경험은 유명희 우세

최종 경선에 오른 나이지리아의 응고지 오콘조이웨알라(Ngozi Okonjo-Iweala) 후보는 아프리카를 대표하는 여성 지도자이자 경제학 박사로 세계은행에서 25년간 근무했다. 재무장관과 외무장관을 역임해 정치적 지명도도 높다. 다만 통상 분야의 경험이 부족한 것은 약점이다. 반면 유명희 본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통상전문가이다. 특히 한미 FTA나 한중 FTA는 물론 동아시아 역내포괄적동반자협상(RCEP) 등 다양한 양자, 다자통상협상에 직접 참여하거나 진두지휘한 현직 통상장관이라는 점은 강점이다. 8명의 후보 중 두 번의 경선을 거쳐 최종 두 명의 후보에 올랐다는 것은 두 후보 모두가 WTO 사무총장직 수행에 필요한 자질이나 능력은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것을 반증한다. 결국 주요국의 지지가 최종 당락을 결정하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WTO 사무총장 최종라운드에 진출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각국 대사들을 초청해 지지를 호소하고 했다. 제네바=연합뉴스

WTO 사무총장 최종라운드에 진출한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이 16일(현지시간) 스위스 제네바 인터콘티넨탈 호텔에서 각국 대사들을 초청해 지지를 호소하고 했다. 제네바=연합뉴스


EU 향한 총력전

미국이나 중국, EU가 경선에 오른 두 명의 후보 중 어느 한 명을 적극 반대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결코 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이 보기에 한국이 미국편에 설 것으로 예상되어 반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및 향후 미중 갈등관계에서 한국의 협력이 중국으로서도 중요하다. 따라서 굳이 한국 후보를 대놓고 반대해 추후 한국의 반발을 사기보다 아프리카 후보를 적극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이러한 관점에서 중국의 반대를 방지하기 위해 미중 간 갈등 이슈에 대해 우리나라가 중립적 자세로 균형감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WTO 사무총장 선거 지원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12일 청와대 여민관 소회의실에서 WTO 사무총장 선거 지원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미국은 한국 후보를 지지할까? 오콘조-이웰라 후보의 강점은 아프리카의 전폭적 지지이지만 그러한 이유로 WTO의 주요 이슈에 대해 선진국보다 개도국 입장을 대변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우려되는 것은 중국의 영향력이다. 에티오피아 출신 세계보건기구 사무총장의 중국 편향성에 대한 미국의 불만은 좋은 예다. 이러한 이유로 미국은 아프리카 후보보다는 한국 후보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에 우리의 전례 없는 외교 총력전이 더해져 아시아와 아메리카 대륙(중남미ㆍ북미)의 지지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EU의 표심이 중요하다. 아프리카는 전통적으로 EU와의 관계가 깊고 EU의 영향권 안에 있다. 따라서 아프리카 후보가 WTO 사무총장이 되면 WTO 관련 주요 이슈에서 그만큼 EU의 이해 반영이 용이할 것이다. 문제는 중국이다. EU 역시 중국의 불공정 무역 행위와 국영기업을 통한 무분별한 보조금지급은 반대한다. 특히 국가 자본주의에 기초한 중국 체제의 세계적 확산은 미국과 함께 자유 민주주의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런데 아프리카 후보는 중국 편에 설 수도 있다. WTO 개혁 이슈와 핵심 쟁점들이 개도국의 입장으로 기울어질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국 후보를 지지하자니 미국에 일방적으로 경도될 것 같아 EU의 이익에 부합하는지 확신이 없다. 결정하기가 매우 어려운 난제가 아닐 수 없다.

유명희 본부장이 강조하고 확신을 심어주어야 하는 점이 여기서 나온다.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 자유무역을 통해 선진국 반열에 진입한 통상국가로 본인은 선진국과 개도국 간 균형잡힌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특히 미-중 갈등에서 사이에 낀 국가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균형감을 유지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을 부각해야 한다. 이와 함께 같은 아시아 회원국의 지지를 추가한다면 한국인 최초로 WTO 수장이 되는 것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0일 예베 코포드 덴마크 외교장관과의 화상회담에서 WTO 사무총장 선거 지지를 요청했다. 연합뉴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20일 예베 코포드 덴마크 외교장관과의 화상회담에서 WTO 사무총장 선거 지지를 요청했다. 연합뉴스


3년씩 나눠 하는 방안도 가능

가능성이 많진 않지만 두 후보가 반반씩 사무총장을 수행하는 타협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전례도 있다. WTO 3~4대 사무총장은 당시 최종 후보에 올랐던 뉴질랜드 마이크 무어 후보와 태국의 수파차이 파니치팍디 후보가 3년씩 나눠 맡았다. 지지 후보 한 명을 결정하기 어렵다면 충분히 생각해 볼 수 있는 방안일 수도 있다.

어느 후보가 되었든 차기 사무총장의 길은 상당히 험난하다. 당장 11월 말로 한 명도 남지 않은 상소기구의 위원 선임을 시작으로 상소기구 기능 복원이 시급하다. 내년 6월로 다가온 각료회의 준비와 성과 도출도 중요하다. WTO 다자통상체제의 신뢰를 회복하는 첫 단추이기 때문이다. 중장기 WTO 개혁도 빼놓을 수 없다. WTO 출범 당시와 크게 달라진 국제무역환경을 반영하는 동시에 미중 간 갈등을 균형 있게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진교 대외경제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고려대에서 농업경제학을 공부하고 미국 메릴랜드대에서 농업 및 자원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9년부터 농촌경제연구원과 대외경제연구원에 몸담으면서 우루과이라운드(1994) 한미FTA(2012) 등 굵직한 무역통상 정책을 연구ㆍ지원했다. 미국 농무부 풀브라이트 방문학자,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통상자문관 등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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