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병원 의원 '사망자 명의 도용 마약류 처방' 분석
2년간 망자 명의로 6,000개 넘는 마약류 약 받아
건보 시스템상 '사망자' 구분 안 하는 허점 이용
최근 2년 동안 병ㆍ의원에서 사망자 명의를 도용해 처방 받은 의료용 마약류가 6,000여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중에는 1년 동안 30번에 걸쳐 3,000개가 넘는 마약류 약품을 처방 받은 사람도 있었다. 사망한 지 12년이나 된 망자의 명의를 도용한 사람도 있었다.그러나 처벌 받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건강보험 시스템에 '사망자'로 표기되지 않는 허점을 이용한 것으로, 이를 차단할 제도적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9일 식약처로부터 받은 '사망자 명의 도용 마약류 처방 세부 현황'을 분석한 결과, 2018ㆍ2019년 병ㆍ의원 등에서 사망자 49명의 명의로 154회에 걸쳐 처방된 의료용 마약류가 6,033개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식약처 마약류 통합관리시스템에 따르면 A씨(시스템상 17번 처방자)는 2018년 11월 10일부터 2019년 11월 21일까지 1년간 사망자 명의로 30번에 걸쳐 3,128개의 마약류 약품을 처방 받았다. B씨(31번 처방자)는 2019년 사망자 명의를 도용해 마약류 약품을 처방 받았는데, 이 사망자는 12년 전인 2007년 사망했다.
사망 신고 후 3년이 지나 사망자 명의로 마약류 처방을 받은 사람은 3명, 사망 4년 뒤 처방 받은 사람은 4명, 5년 2명, 6ㆍ7년 1명, 12년 1명이었다.
알프라졸람ㆍ 졸피뎀 4,000개 죽은 사람 이름으로 빠져나가
사망자 명의 도용으로 가장 많이 처방된 의료용 마약류는 '알프라졸람(정신안정제)'으로, 2,973개가 처방됐다. 다음으로는 '졸피뎀(수면제)' 941개, '클로나제팜(뇌전증치료제)' 744개, '페티노정(식욕억제제)' 486개, '로라제팜(정신 안정제)' 319개, '에티졸람(정신안정제)' 200개, '펜터민염산염(식욕억저제)' 120개, '디아제팜(항불안제)' 117개, '펜디라정(식욕억제제)' 105개 순이었다.
알프라졸람, 졸피뎀, 클로나제팜, 로라제팜, 에티졸람, 디아제팜 등은 향정신성 의약품으로 인체 중추신경계에 직접 작용, 오ㆍ남용 시 사망에 이를 수 있는 위험 약물이다. 반드시 전문 의료진의 판단에 따라 적정량을 투입해야 한다. 실제로 해당 약물들은 강력범죄에 악용됐다.
수천개의 마약류 약품이 망자 명의로 뿌려졌지만,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별다는 조치를 할 수 없었다. 사망한 지 10년이 지난 사망자 명의를 도용할 수 있었던 건 '국민건강보험 수진자 조회시스템'의 허점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건보 수진자 시스템에는 사망 여부가 표시되지 않는다. '무자격자(건강보험 적용 대상 아님)'로 나온다. 사망자나 장기 체납자, 이민자가 모두 같은 개념으로 분류된다는 의미다. 건강보험 급여를 받지 않겠다고 하면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되는 '자격 상실인'으로 표시돼 사망자 명의로 진료와 처방을 받을 수 있다. 현행 의료법에는 병ㆍ의원 진단ㆍ처방 시 본인 확인을 강제하는 의무 조항은 없다.
식약처, 허점 방관해 처벌 받은 사람 한 사람도 없어
강 의원은 "처방된 의료용 마약류는 범죄 등 다른 목적에 악용될 소지가 충분하다"며 "건강보험 수진자 조회 시스템에 별도 코드를 넣어 사망자, 장기 체납자, 이민자 등으로 분류만 했어도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약품 관리 기관인 식약처가 방관했다는 점도 문제다. 마약류 약품이 법망을 피해 다른 사람의 명의로 처방됐지만, 처벌 받은 경우는 단 한 차례도 없었다.
강 의원은 "식약처는 의료용 마약류 관리에 책임이 있는 기관이지만, 제도의 허점을 방기하고 의심 처방 사례에 대한 제재를 가하지 않았다"며 "건강보험, 식약처 등 관계기관이 함께 사망자 명의 처방 방지를 위한 건보 시스템 개편 등 대책을 내놓을 시점"이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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