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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로회장, 치매노인 돈 빼돌린 혐의로 입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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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경로회장, 치매노인 돈 빼돌린 혐의로 입건

입력
2020.10.19 16:30
수정
2020.10.28 08:49
10면
0 0

경찰, 경로당 회장ㆍ총무 준사기 혐의 입건
치매노인 '실버시터' 등록 후?
정부 지원금 빼돌린 혐의

19일 치매노인을 실버시터로 등록한 종로구의 구립 경로당의 모습. 박지영 기자

19일 치매노인을 실버시터로 등록한 종로구의 구립 경로당의 모습. 박지영 기자

치매노인을 정부 지원 일자리사업에 이름만 올려, 치매노인 명의 통장에 입금된 활동비를 빼돌린 혐의로 서울 시내 한 경로당 회장이 경찰에 입건됐다. 피해자 측은 "경로당 회장이 치매를 앓는 피해자를 속여 돈을 빼돌렸다"고 주장하고 있는 반면, 회장 측은 "할머니의 경제적 지원을 위해 대신 신청한 것이고, 활동비는 모두 반환했다"는 입장이다.

19일 경찰 등에 따르면 서울 종로경찰서는 8월 10일 종로구 한 경로당 회장 A(79)씨와 전 총무 B(80)씨를 준사기 혐의로 불구속 입건해 조사 중이다. 준사기는 미성년자의 경험 부족이나 심신장애인 등의 어려운 처지를 이용해 재산상 이익을 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이들은 인지능력이 떨어지는 치매노인 김모(81) 할머니를 경로당 '실버시터(silver-sitter)'로 등록한 뒤, 김 할머니가 받아야 할 활동비 156만6,000원을 빼돌린 혐의를 받는다.

실버시터는 정부의 노인일자리 사업 중 하나로, 만 65세 이상 기초연금수급자 등을 고용해 소득을 제공하기 위한 취지로 2007년부터 시행됐다. 실버시터로 선정된 노인은 동료 노인들이 이용하는 경로당 내 환경 정비와 식사 준비 등을 돕는 대가로 매월 27만원의 지원금을 받는다. 대한노인회는 사업 초기부터 정부로부터 실버시터 사업을 위탁 받아 14년째 수행 중이다.

피해자 김 할머니의 딸 송모(45)씨와 대한노인회, 경찰 등에 따르면 A씨는 지난해 12월 정신이 온전치 않은 김 할머니에게 "안전하지 않으니 당신 물건을 보관해 주겠다"고 한 뒤, 김 할머니의 신분증과 도장, 통장 2개, 집 열쇠를 자신이 보관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지난해 12월 24일 피해자와 동행해 대한노인회 종로구지회 사무실에 방문, 김 할머니의 신청서를 작성해 자신이 회장으로 있는 경로당의 실버시터로 등록했다. 통장을 만드는 것은 총무 B씨의 일이었다. B씨는 같은달 30일 종로구의 한 은행에 김 할머니와 동행해 A씨가 보관 중이던 김씨의 신분증을 이용해 실버시터 지원금을 받기 위한 김 할머니의 새 통장을 개설했다.

A씨는 이후 활동비가 지급되는 김 할머니의 통장과 카드를 통해 올해 2월부터 7월까지 총 5차례에 걸쳐 올해 상반기 6개월간의 활동비 전액 156만6,000원을 현금지급기(ATM)를 통해 인출했다. 올해 2월 치매로 장기요양 5등급 판정을 받은 김 할머니는 이 기간 중 경로당 청소나 식사 준비를 정상적으로 수행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났다. 실제로 김 할머니는 4월부터는 치매 증상이 심해져 며칠에 한 번 꼴로 실종됐고, 파출소에서 발견되기 일쑤였다. 장기요양 등급을 받은 노인은 실버시터로 활동할 수 없지만, 대한노인회 측은 실버시터 선발시에만 등급을 확인하고 사후 관리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김 할머니의 딸 송씨는 8월 초 대리인 자격으로 A씨를 경찰에 고소했다. 송씨는 "어머니는 지난해부터 인지능력이 떨어져서 날짜와 시간도 구분하지 못 한다"며 "ATM 사용법도 전혀 모른다"고 울분을 터트렸다. 이어 “어머니가 방문했던 은행을 가봤는데 나도 올라가기 힘들 정도로 계단이 가팔랐다”며 “어머니는 양쪽 무릎을 수술하고 허리도 굽었는데, 돈 때문에 어머니를 이런 곳에 데리고 다녔다니 화가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말했다. 경로당 회장이 치매노인의 명의를 이용해 활동비를 수령한 사실이 드러나자 지역 노인사회는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한편 경로당 회장 A씨는 김 할머니의 경제적 지원을 위해 본인이 대신 실버시터 사업에 등록해줬다는 입장이다. A씨는 “김 할머니가 지난해 12월 일자리사업을 그만두게 된 것이 안타까워 실버시터에 등록한 것 뿐”이라며 "실버시터로 등록할 당시 김 할머니는 의사소통이 가능할 정도로 정상생활이 가능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김 할머니가 이후 치매 증상으로 일을 할 수 없었고, 당연히 인출한 돈은 한 푼도 쓰지 않고 통장에 끼워 놓은 채 그대로 보관했다”며 "도장이나 신분증 등도 김 할머니가 부탁해 대신 보관하고 있던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김 할머니가 실제로 일을 하지 않았기에 실버시터도 6월 30일자로 중단하고, 활동비도 7, 8월 두 차례에 걸쳐 대한노인회에 지원금 전액을 돌려준 것으로 확인됐다.

이승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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