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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 ‘타이밍’에 죽고 산다

입력
2020.10.19 04:30
수정
2020.10.19 09:21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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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낙연(맨 왼쪽에서 다섯 번째)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손경식(네 번째)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이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백범로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열린 '공정경제 3법'과 관련한 간담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낙연(맨 왼쪽에서 다섯 번째)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손경식(네 번째)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등이 6일 오전 서울 마포구 백범로 한국경영자총협회에서 열린 '공정경제 3법'과 관련한 간담회에서 기념촬영하고 있다. 연합뉴스


“나라 밖의 외군이나 복병으로 나타난 특수군도 벅찬 데 이젠 관군까지 상대해야 할 마당이니, 한숨만 나올 뿐입니다.”

3중대의 적군에 포위된 전시상황으로 비유했다. 글로벌 기업들은 외군으로, 연초부터 출몰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특수군, 그리고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과 집단소송제 및 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 들고 나온 정치권은 관군으로 지목했다. 최근 만난 한 대기업 임원이 전한 요즘 재계의 속앓이다. 그는 특히 정치권에서 꺼내든 규제 쓰나미로 국내 기업들의 아우성은 극에 달한 상태라고 했다.

정부와 정치권에서 제시한 규제 목적은 소수 지분으로 경영권을 행사하는 기업 오너 견제와 소비자 권익 보호 등으로 요약된다. 말 그대로 ‘공정경제’에 필요한 제도 개선이라는 게 정부측에서 내세우는 명분이다. ‘기업 옥죄기’가 아니란 것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지난 6일 한국경영자총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공정경제 3법은 우리 기업들의 건강성을 높여드리기 위한 것이지, 기업들을 골탕 먹이기 위한 법안이 아니라는 말씀을 분명히 드린다”고 말했다.

재계와의 온도 차는 상당히 크다. 경영권 방어와 법적 소송에 적지 않은 시간을 빼앗길 수 밖에 없다는 게 재계의 가장 큰 우려다. 당장 지난해 현대차그룹의 경영권을 위협했던 ‘엘리엇 사태’와 유사한 사례가 또 다시 재현되지 말란 법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 뿐인가. 기업인들은 수사기관에 수시로 불려 다녀야 할 판이라고 걱정한다.

하지만 이 법이 태동하기까지 그 귀책사유가 기업들에 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어렵다. 경영진의 비리나 불법 행위로 기업에 피해를 입힌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사회의 사내외 이사 역시 총수나 경영진과 가까운 인물들로 채워지는 게 다반사다. 경영진을 감사해야 할 감사위원마저 이들에 의해 선출되는 상황이니, 견제 기능이 제대로 작동될 리 만무하다. 재계가 정치권에 공정경제 3법을 보류해달라고 발버둥치는 데도, 여론이 싸늘하게 등을 돌리는 이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황에 공정경제 3법을 강행하겠다는 정부의 행보엔 동의하기 어렵다. 지금은 전시상황이다. 지구촌을 마비시킨 코로나19의 최근 재확장세는 심각하다. 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한 감염자는 연일 급증세다. 유럽에선 이미 식당과 술집의 야간 영업이 잇따라 중단됐다. 프랑스에선 밤 9시 야간 통행금지 조치까지 나왔다. 그 타격은 고스란히 기업에 전해질 수밖에 없다. 차세대 먹거리 창출이나 연구개발(R&D) 투자, 일자리 확보 등은 고사하고 당장 생존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한국경영자총협회와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단체들이 ‘공정경제 3법’ 보류에 올인하고 나선 까닭이다. 코로나19 재확산 등을 감안해 달라는 호소다.

기업들은 코로나19 여파에 매 순간이 살얼음판이다. 코로나19 전시 상황에 지원군은 못 보낼 망정, 적어도 내부 총질에 나설 시점은 아니란 얘기다. 공정경제 3법 추진을 최소한 코로나19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온 이후로 미루면 어떨까. 기업에게 무조건 시간을 벌어주자는 게 아니다. 적어도 천재지변에 가까운 코로나19만 피해서 가자는 취지다. ‘타이밍’에 죽고 사는 게 기업이다.

한국일보 산업부장

허재경 산업부장

허재경 산업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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