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앙해요” 44년 전 실종된 딸…‘유전자 채취’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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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앙해요” 44년 전 실종된 딸…‘유전자 채취’로 만났다

입력
2020.10.18 09:00
수정
2020.10.18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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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실종된 윤상애씨 미국으로 입양
지난달 유전자로 친자 최종 확인
15일 '언택트 상봉'으로 44년 만에 만나

정부의 '해외 한인입양인 가족 찾기 제도'를 통해 가족을 만난 윤상애(모니터 안)씨가 15일 서울 동대문구 실종자가족지원센터에서 엄마, 쌍둥이 언니, 오빠와 화상 상봉을 하고 있다. 최다원 기자

"머리(스타일)만 다르고 다 똑같잖아!"

15일 오전 10시 서울 동대문구 실종자가족지원센터. 모니터에 비친 윤상애(47ㆍ미국명 데니스 맥커티)씨의 얼굴을 마주한 쌍둥이 언니 상희씨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한 채 눈물부터 터뜨렸다. 함께 있던 엄마 이응순(78)씨, 오빠 상명씨도 시시각각 변하는 상희씨 표정을 단 한 순간이라도 놓치기 싫다는 듯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상애씨가 실종된 지 무려 44년 4개월 만의 만남. 세살배기 어린 아이였던 상애씨는 어느덧 40대 후반의 어른이 돼 가족 앞에 나타났다.

1976년 6월 외할머니 손을 잡고 외출했다가 길을 잃은 상애씨는 6개월 뒤인 12월 미국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입양됐다. 응순씨 가족은 상애씨가 미국으로 입양된지도 모른 채, 40년 넘게 밤낮으로 그를 찾아 헤맸다. 아이를 찾는다는 전단지를 뿌리며 전국 곳곳의 고아원을 찾아다녔고, 방송 출연과 신문 광고도 서슴지 않았다.

'가족찾기' 유전자 해외 채취 통해 친자관계 확인한 첫사례

막막했던 응순씨 가족에게 한 줄기 빛이 보인건 3년 전쯤이다. 2017년 4월 상애씨와 응순씨의 유전자 분석 결과 친자 관계일 확률이 높으니 재검사를 진행하자는 소식이 각각에게 전달된 것. 친부모를 찾으려던 상애씨가 한 단체를 통해 2016년 6월 한국에 입국해 유전자를 채취하고, 응순씨도 마지막 기회라는 마음으로 2017년 2월 유전자를 채취한 게 계기가 됐다.

이응순씨 가족이 갖고 있었던 40여년 전 상애씨 사진과 실종 당시 배포했던 '아이를 찾습니다' 전단지. 최다원 기자

응순씨는 곧장 유전자를 재채취했으나, 상애씨는 미국 현지에서의 업무 등으로 입국이 쉽지 않았다. 올 들어서는 코로나19 창궐로 입국 채취는 더욱 어려워졌다. 상애씨와 응순씨의 마음이 조급해질 쯤인 올해 1월, 마침 정부는 '해외 한인입양인 가족찾기' 제도를 통해 재외 공관에서도 입양인의 유전자를 채취ㆍ분석할 수 있도록 절차 정비를 완료했다. 이에 상애씨는 지난 7월 미국 현지 공관에서 유전자를 재채취했고, 둘의 친자 관계는 지난달 극적으로 최종 확인됐다.

그렇게 성사된 상애씨와 응순씨 가족의 만남은 코로나19 우려로 '언택트 상봉'(대면이 아닌 화상 통화로 만남) 형식으로 진행됐다. 모니터라는 장벽이 있었지만, 쌍둥이 자매의 얼굴은 한 눈에 봐도 똑닮아 있었다. 기다란 눈매와 웃을 때 한껏 올라가는 입꼬리 등 모든 것이 자신과 닮아있는 쌍둥이 동생을 확인한 상희씨는 40년 동안 가슴에만 묻어 온, "우리는 절대 널 버린게 아니야"라는 말을 연신 되뇌었다.

아이 잃은 남대문시장서 40년 기다린 엄마..."미안해"

"보고싶어요 엄마. 엄마, 유 아 뷰티풀(You are beautifulㆍ당신 예뻐요)." 상상 속에서만 수만번 그렸을 엄마 앞에서 상애씨는 그간 익혀온 한국말 실력을 뽐내 보였다. 상애씨가 꺼내놓는 서툰 단어들에 엄마와 형제들은 잠시 울먹임을 멈추고 웃음 꽃을 피웠다.

미국 버몬트주에 거주하는 상애씨는 친부모에게 버려진 줄로만 알고 살았다고 한다. 아파서 경기 수원시 한 병원에 입원했다가, 그곳에서 버려졌다고. 상애씨는 "어머니가 계신줄도 몰랐고 쌍둥이 언니, 오빠가 있는 것도 정말 몰랐다"며 "어렸을 때 사진을 엄마를 통해 보고는 너무 똑 닮아 놀랐다"고 했다.

윤상애씨 가족이 15일 상애씨와 화상 상봉을 하며 환하게 웃고있다. 왼쪽부터 상애씨 오빠 상명씨, 쌍둥이 언니 상희씨, 엄마 이응순씨. 최다원 기자

반면 응순씨는 혹시라도 상애씨가 돌아올까봐 그가 길을 잃은 서울 남대문시장에서 40년 넘게 장사를 해왔다. 호적도 차마 말소시키지 못했다. "네가 한국에 와서 남대문시장에 들러 한복을 사갔다고 하는데 우리가 못만났잖아. 40년을 일했는데 거기서… 미안해. 낯선 곳에서 말도 다 낯설었을텐데, 엄마가 미안해." 거듭 용서를 구하는 응순씨를 상애씨는 "미국 양부모님들이 좋은 거주 환경도 제공해주고 잘 교육해주셨다"며 위로했다.

센터에 오기 전 마음을 안정시키는 약까지 먹었다는 응순씨는 여느 부모가 그렇듯 상애씨의 '먹고 사는 일'을 궁금해했다. "학교는 잘 나왔느냐? 무슨 회사에 다녀?" 엄마의 긴장 섞인 물음에 상애씨는 "대학에선 법학을 공부했다"며 "미국 연방정부 상무부 쪽과 버몬트 주 정부 일을 병행하고 있다"고 대답하며 웃었다.

상애씨는 40여년 만에 가족을 직접 만나면 무얼 하고 싶냐는 질문에 "일단 가족을 한번 안아보고, 함께 요리를 하며 맛있는 음식을 먹고 싶다"며 "가능한 한 빨리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다.

대화 말미, 상애씨와 가족은 그간 못한 '사랑한다'는 말을 아낌없이 주고 받았다. "양부모님에게 고맙다고 꼭 전해드려! 아이 러브 유(I love you)."(응순씨) "살앙해요.(사랑해요)"(상애씨) "원 모 타임(One more timeㆍ한번 더), 아이 러브 유!"(상희씨)

윤상애씨가 2017년 한국 경찰청에서 유전자를 채취하는 모습. 윤씨 제공


14개국 34개 재외공관서 유전자 채취 가능

상애씨 가족의 만남에는 올 들어 경찰청과 외교부, 보건복지부 합동으로 시행하게 된 '해외 한인 입양인 가족찾기' 제도가 큰 역할을 했다. 해당 제도는 한인입양인이 △아동권리보장원을 통해 입양정보공개 청구를 신청해 무연고 아동임이 확인되면 재외공관을 통해 유전자를 채취하고 △채취된 검체를 외교행낭으로 경찰청에 송부해 실종자 가족 유전자 정보와 대조하는 과정으로 진행된다. 현재 미국과 프랑스, 영국, 독일 등 14개국 34개 재외공관에서 유전자 채취가 가능하다.

사정 상 국내 입국이 어려운 입양인들에게는 물론, 코로나19 같은 전 세계적인 전염병 확산 상황에 긍정적인 효과를 낼 것으로 보인다. 경찰청 관계자는 "장기실종자 발견은 실종자 가정만의 문제가 아닌 온 국민의 염원이 담긴 숙원"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신지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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