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 임하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표정이 복잡미묘하다. ‘의정활동의 꽃’으로 통하는 국감에서 돋보여야 한다는 의욕과 여당 입장에서 정권에 부담이 되는 ‘자책골’을 피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동시에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정철학 뒷받침” 이라는 공공연한 지도부의 지침에 적정선을 찾기위한 초ㆍ 재선 의원들의 움직임은 더 분주하다. 여당만의 '고차 함수'를 풀다 보니 정권이 후반기를 달려가는데도 질의의 초점이 ‘이전 정부의 행태’로 거슬러 올라가는 진풍경도 빚어진다.
국감은 통상 ‘야당의 무대’가 되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번 국감을 대하는 민주당 의원들의 분위기는 야당 못지 않게 비장하다. 당의 ‘국정감사 우수위원’에 꼽히기 위한 눈치작전이 치열한 탓이다. 선정 결과 등이 쌓여 완성되는 종합적 의원평가가 올해 21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적잖은 역할을 했다는 후문도 의원들의 긴장감을 높이고 있다.
평시에도 야전병원을 방불케할 만큼의 분주함이 감도는 민주당 각 의원실 보좌진들은 ‘정부와 선을 지키면서도 송곳 질의’를 발굴하는 것이 지상과제가 됐다. 각 부처와 공공기관의 실책을 지적하더라도 집권 4년차를 맞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부담으로까지 작용해서는 안 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작용하는 것이다. 질의가 여당과 정권에 너무 아픈 화살로 되돌아올 경우 당장 당원이나 강성 지지자의 공세를 감당해야 할 뿐 아니라, 당내 평가에서도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우수의원으로 선정되기 위해선 지도부에 △질의서 △보도자료 △정책자료집 △온라인 정책활동 성과 △카드뉴스 제작 실적 등을 모두 제출해야 하는 점도 상당한 부담이다. 국감성과를 "양보다 질로 평가하겠다"는 취지로 요구된 제출자료지만, 지도부 및 평가자가 각 의원들의 질의 내용을 하나하나 들여다볼 수 있는 만큼, 코드에 맞는 질의에 집중해야 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앞서 민주당보좌진협의회는 원내 지도부와 상의를 통해 14일 당 소속 의원실에 '정부 국정철학에 부합하는 국감 활동’을 정리해 제출하라는 공지를 전했다. 민주당 원내지도부가 최근 의원들을 향해 "피감기관에 지나치게 고압적으로 하지 마라"고 당부한 일도 16일 알려졌다. 이에 대해 원내 관계자는 "갑질 논란을 부를만큼 고압적인 태도를 자제하라는 것 외의 다른 의도는 없는 당부"라고 설명했다.
한 민주당 의원실 보좌관은 “질의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국정 철학에 얼마나 부합하는지가 중요하다는 기준까지 공공연히 공유되다 보니 검열을 받는 느낌”이라며 “정부 감독기관으로서 헌법이 보장하는 감사를 하는데 아무리 여당이지만 3권분립에 위배되는 상황이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민주당 보좌관은 “여당이다 보니 안그래도 너무 아프게 나가면 일단 악플 세례부터 감당한다"며 "공식 가이드라인까지 있으니 아무래도 의식이 많이 된다”고 말했다. 각 의원실 스스로가 ‘행정부를 견제해야 할 입법부 일원’으로의 정체성과 문재인 정부에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할 ‘여당 의원’의 처지를 끊임없이 저울질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민주당 의원들 질의가 △최근 통계를 활용하긴 하지만 결국 이명박ㆍ박근혜 정부 때 시작된 정책의 실책을 파고들거나 △야당 인사 대상 감사나 수사를 게을리 견제한 행정부를 질책하는 일에 집중되는 등 우회로를 찾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야당의 표적이 되고 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16일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표단회의에서 “민주당은 감사 초기부터 국정 철학을 제대로 지원하라는 지침을 내렸다고 한다”며 “국정감사를 제대로 해야 할 여당이 앞장서서 국감을 무력화하고 있는 것 같다”고 날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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