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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의 정치 데뷔 선언

입력
2020.10.26 18:00
2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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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재
이충재주필

‘국민에 봉사’ 발언, 정계 진출 강한 암시
靑·여당 작심 비판, 치밀한 전략 세운 듯
정치할 생각이면 檢 위해 조기 사퇴해야


2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응원하는 화환들과 현수막이 놓여 있다.

26일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 윤석열 검찰총장을 응원하는 화환들과 현수막이 놓여 있다.


독무대로 끝난 ‘윤석열 국감’에서 관심을 기울였던 대목은 그의 정치 참여 의향이다. 여론조사에서 보수 진영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에 오른 지 꽤 됐지만, 그로부터 직접 얘기가 나온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국감 내내 지켜보고 든 생각은 윤 검찰총장이 정계 진출을 굳혔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번 국감은 윤석열의 정치 데뷔 무대였다고 할 수 있다.

관련 발언은 국감 말미에 나왔다. “퇴임하고 나면 우리 사회와 국민을 위해서 어떻게 봉사할지 방법을 생각해보겠다”는 말이다. 정계 진입 가능성을 묻자 “지금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했다. 정치 입문 여지를 뒀다는 해석은 소극적 관측이다. 대개 그쪽 직역의 인사들은 퇴임 후 로펌이나 대학 등으로 갈 때 “후배를 키우겠다” “사회에 보답하겠다”고 하지 “국민에게 봉사”를 얘기하는 이는 없다. 그건 정치에 뜻을 품은 사람들의 관행적 수사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수사지휘권 행사에 대한 윤 총장의 격렬한 반발은 의도성을 띠고 있다. “위법하고 부당하다”는 그의 주장은 법률적 논란을 겨냥한 게 아니다. 앞서 청와대가 “성역 없는 수사를 위해 수사지휘권 행사는 불가피하다”고 밝힌 데 대한 정면 반박이다. 대통령이 내린 결정에 ‘위법’이라는 딱지를 붙인 것은 웬만큼 마음을 굳게 먹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행동이다. 자신의 입지를 높이려는 정치적인 목적이 내포돼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

인사권자인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공개석상에서 거론한 것도 윤 총장의 속내를 파악할 수 있는 단서다. “무례한 행동”이라는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이 말을 꺼낸 이유는 뭘까. 문 대통령이 임기를 보장한 마당이니 이제 그 누구도 물러나라 마라 할 명분이 없어졌다. 만약 문재인 대통령이 윤 총장을 해임하면 “한 입으로 두말한다”는 비판이 쏟아질 테고, 여당에서 그만두라고 하면 대통령의 지시를 거역한 게 된다. 이제 검찰총장직을 그만두고 말고는 오로지 윤 총장의 손에 달린 셈이다.

윤 총장은 대검 국감에 치밀한 전략을 세우고 임한 것으로 보인다. “총장은 장관 부하가 아니다”는 말에 응축돼 있듯 청와대, 법무부와 대립각을 키우고, “전에는 안 그러셨잖아요”는 말에서 나타나듯 여당의 ‘내로남불’을 여지없이 까발렸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는 모습을 보여 야당과 보수 진영의 지지를 이끌어내려는 심산일 것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제기된 의혹은 부인으로 일관했다. 가족 관련 사건은 “근거 없다”고 하고, 검사들의 향응은 “몰랐다”며 피해갔다. 정계 진출 후라도 불거질 수 있는 싹은 미연에 제거하자는 속셈이 묻어난다.

검찰총장 퇴임 뒤 정치에 발을 담근 사례는 극소수지만, 윤 총장의 정계 진출을 대놓고 비판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검찰 조직원 모두가 자신들의 수장이 곧 정치판에 나갈 것이라고 예상하는 상황이라면 사정은 다르다. 윤 총장이 내세운 검찰의 중립성과 공정성을 아무 의심 없이 믿고 따를 수 있을까.

가뜩이나 지금 국민이 우려하는 것은 ‘검찰의 정치화’다. ‘살아 있는 권력’에 대한 정치 권력의 검찰 개입을 우려하는 시각도 적지 않지만, 검찰의 정치적 편향성에 대한 의구심도 못지않은 게 현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윤 총장의 정계 진출 시사 메시지는 검찰을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앞으로 어떤 정치 관련 수사 결과를 내놔도 국민은 믿지 않을 것이다. 검찰의 행위 하나하나에 더욱더 정치적 해석이 덧씌워질 수밖에 없다.

윤 총장이 정치할 생각이 있다면 당장이라도 물러나는 게 옳다. 그런 총장이 지휘하는 검찰이 아무리 중립성을 외친들 이를 수긍할 국민은 없을 것이다. 본인도 정치판에 관심 쏟느라 일이나 제대로 챙길 수 있겠는가.

이충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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